[분석과 시각] 中, 訪北보다 南巡 했어야
입력
수정
지면A35
"중국의 對北전략은 냉전적 사고북한의 2006년 1차 핵실험 후 처음으로 중국 국가수반이 지난주 평양을 방문했다. 어떻게든 핵무장을 풀지 않고 정상국가로 대접받으려는 북한과 경제성장 둔화 와중에 미국의 전방위 압박과 홍콩 시위 사태로 곤궁해진 중국의 위상 회복 의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세계 경제의 신보호주의 격랑 속에서 각국이 경제와 정치, 심지어 안보 문제까지도 함께 엮어 전략을 구사하는 양상을 고려하면 중국의 행보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잘못된 선택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鄧 남순강화 후 경제 도약했듯
정치·경제 불확실성부터 없애야"
오승렬 < 한국외국어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 >
지난 9일 홍콩의 전례 없는 대규모 시위에 당국이 강경 진압으로 맞섰다. 이른바 ‘범죄인 송환(인도)법’ 입법에 반대하는 ‘반송중(反送中)’의 거대한 외침은 당국의 입법 유보와 사과를 이끌어 냈다. ‘일국양제’와 고도의 자치를 위협하는 중국으로 인해 ‘이등 공민’으로의 전락을 우려하는 홍콩인의 절망감이 배경이 됐다.중국의 홍콩 관리 방식은 중국 시장경제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는 풍향계다. 홍콩은 중국의 개혁·개방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해왔다. 1980년대 냉전의 끝자락에서 걸음마를 시작한 중국 경제의 수출입과 외자 유입을 중개했던 자유무역항과 국제금융센터 기능은 아직도 베이징이나 상하이가 대체하지 못한다. 자유롭고 안정된 홍콩의 경제 제도와 법치 환경은 중국 경제의 취약점을 보완하는 전략 기지이자 대외경제 관계의 교두보 역할을 맡는다.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2~3년 동안 중국의 개혁노선은 위기를 맞았다. 유혈진압으로 명분상 우위를 점한 좌파는 시장지향적 개혁의 물꼬를 되돌리려 했다. 진퇴양난의 곤경에 처한 덩샤오핑은 ‘남순강화(南巡講話: 남쪽 지방 순회강연)’로 돌파구를 찾았다. 87세의 덩샤오핑은 1992년 1월 18~21일 개혁의 상징이었던 선전과 주하이 등의 남부 지역을 순회하면서 일갈했다. “개혁을 통한 발전만이 불변의 진리이며, 눈앞의 발전 기회를 놓치지 말고 대담하고 신속하게 변할 것”을 주문했다. 이후 전국으로 들불처럼 확산된 개혁·개방 정책에 힘입어 중국은 경제대국으로 거듭났다.
최근 중국을 둘러싼 불확실성을 제거하려면 과감한 제2의 남순강화가 시급하다. 관료주의가 지배하는 중국의 기업문화와 불투명한 경제 제도는 미국에 압박 빌미를 제공했다. 중국의 국가주석 임기 철폐와 갈수록 강화되는 사회 통제, 홍콩 및 대만에 대한 강압 정책은 중국의 미래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관점에 설득력을 보탠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남순강화에 나선다면 중국이 직면한 미국의 압력과 국제사회의 우려를 해소하고, 홍콩과 대만 주민의 호응 속에 중국 경제를 다시 한 번 발전 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시 주석은 제2의 남순강화를 통해 중국 시장 제도 및 관료주의 개선, 홍콩 및 대만의 고도의 자치권 재확인, 남중국해 주변국과의 협력과 북한 비핵화를 통한 동아시아 평화에 대한 진정한 ‘중국의 꿈’을 보여줘야 한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를 무색하게 만들고,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올려놓을 것이다.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이번 시 주석의 방북(訪北)보다는 남순(南巡)이 더 긴요했다.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실질적 조치로 뒷받침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정상적’으로 화려했던 북한의 시 주석 접대가 중국의 국익이 될 수는 없다.
핵무기 개발로 국제사회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이를 핑계로 주민을 옥죄고 있는 북한 방문을 미국과의 협상 지렛대로 삼으려는 것은 냉전적 사고다. 중국의 전략적 북한 접근은 미국과의 소모적 갈등에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지역을 연결하는 거대 경제권의 잠재력은 사장될 수밖에 없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제2의 남순강화를 통해 또 다른 도약을 이루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