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서두르는 미·중·러

음속의 10~20배 속도로 날아가는 '차세대 무기'
ICBM 못 가는 단거리용, 현존 기술로 방어 불가
중·러는 이미 기술 완성 단계...美, 2022년 목표
핵무기와 달리 협약논의 없어 新냉전 초래 우려
미국 방산업체 록히드마틴은 17일 음속의 5배인 마하 5를 초과하는 극초음속 미사일을 미 공군의 B-52 폭격기에서 시험발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비행 중인 B-52 폭격기.(사진=AP)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세계 열강들이 단거리용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극초음속 미사일은 음속의 10배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 목표물을 요격하는 차세대 무기다. 현존하는 그 어떤 방어 체계로도 막을 수 없어 방산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판도를 바꿔 놓을 만한 제품)’로 통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미국 정부가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에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 의회는 2022년 10월까지 극초음속 미사일을 실전에 배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올해에만 관련 예산으로 26억달러(약 3조원)를 배정했다. 미 정부는 지난해 극초음속 미사일 기술 개발을 위해 225명의 전문가로 이뤄진 국방부 산하 우주개발국을 신설하기도 했다.미국이 개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극초음속 미사일은 음속의 15~20배로 움직이는 단거리 미사일이다. 현존하는 가장 빠른 미사일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요격할 수 없는 5500㎞ 이하 거리의 목표물을 대상으로 한다. 음속의 15배인 마하 15를 기준으로 할 경우 1초에 5㎞를 날아가는 수준으로, 괌에서 중국 본토를 향해 발사하면 15분 안에 베이징을 파괴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 만큼 빠른 미사일이 실전에 배치된다면 현재까지 개발된 그 어떤 방어막으로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개발이 쉽지는 않다. 가공할 만한 속도로 인해 발생하는 마찰열에 미사일의 전자장치가 망가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현재 개발 중인 극초음속 미사일이 핵탄두가 아닌 재래식 폭발물을 장착하는 형태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미국은 이미 2012년과 2014년 사이 세 차례에 걸쳐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실험을 진행했지만 아직까지 충분히 강한 합금을 개발하지 못한 관계로 모두 실패로 끝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관영 CCTV가 올해 초 공개한 중국 전함에 탑재된 극초음속 미사일 레일건 사진. (사진=CCTV)
미국 외에도 중국과 러시아가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두 국가는 관련 기술이 이미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마하 10의 속도를 내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끝냈다고 발표했다. 극초음속 미사일과 관련된 중국의 기술력은 러시아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초 극초음속 미사일을 탑재한 전자기식 레일건을 처음 공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중국과 러시아의 기술력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은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완료 시점을 앞당기기 위해 민간 기업에 도움을 요청했다. 미 국방부는 지난해 8월 방산업체인 록히드마틴에 공중 발사가 가능한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을 의뢰했다. 록히드마틴은 지난 17일 미 공군의 B-52 폭격기에서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하는데 성공한 사실을 밝혔다. 해당 미사일의 속도는 마하 5 수준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NYT는 최근 가속화하고 있는 극초음속 미사일 개발 경쟁이 전 세계적인 군비 증강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과거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등 광범위한 피해를 낼 수 있는 무기가 개발되던 때에는 국제적 수준의 통제협약이 이뤄졌지만 극초음속 미사일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이러한 논의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과거 냉전 시대 때 미국과 러시아가 군비 증강 경쟁을 진행하던 당시에 버금가는 공포가 재현될 수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정연일 기자 ne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