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 폐지' 밀어붙이는 진보교육감…교육부는 신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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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 압박하는 진보교육감전북 전주 상산고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탈락하며 시작된 ‘자사고 죽이기’ 논란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상산고에 낙제점을 준 전북교육청의 김승환 교육감은 교육부가 자사고 지정 취소에 동의하지 않으면 권한쟁의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며 교육부를 압박하고 나섰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한다는 국정과제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그 과정은 합리적이고 단계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합리적으로 결정"
‘자사고 죽이기’ 나선 진보교육감상산고는 지난 20일 자사고 재지정 평가에서 통과 기준 점수(80점)에 0.39점 모자란 79.61점을 받았다. 상산고가 속해 있는 전북교육청은 다른 시·도교육청(70점)과 비교해 기준 점수가 10점 더 높아 형평성 논란이 일었다. 같은 날 경기 안산 동산고도 기준 점수인 70점에 못 미치는 62.06점을 받아 재지정 취소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동산고 역시 “다른 시·도교육청과 비교해 경기교육청 지표가 학교에 불리한 항목이 있다”며 “불공정한 평가 결과”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자사고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진보교육감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고 있다. 김 교육감은 “70점은 전주 지역 일반계 고등학교도 쉽게 넘을 수 있는 점수”라고 강조했다. 이어 “교육부 장관이 교육청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부동의가 이뤄진다면 권한쟁의 심판 절차에 들어가는 등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재정 경기교육감도 “자사고나 특목고는 특혜와 특권을 부여받은 학교”라며 “학교 평가 기준을 더 높게 요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 ‘자사고 폐지론자’인 조희연 서울교육감도 이들 주장에 힘을 보탰다. 조 교육감은 “자사고는 시대적 소명이 다했다고 본다”며 “서울 13개 자사고 재지정 평가 결과를 다음달 초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장휘국 광주교육감은 “자사고 폐지 관련 법령을 개정해 (교육부 장관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시·도교육감으로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자사고 일괄 폐지는 안 돼”
교육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유 부총리는 지난 24일 정부세종청사 인근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방향은 일관되게 추진할 것이지만 교육부가 시행령을 개정해 자사고를 일괄 폐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밝혔다. 정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자사고를 일괄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선을 그은 것이다.
그는 청와대가 ‘자사고 지정 취소 부동의’로 가닥을 잡았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이어 “최종 권한은 교육부에 있고 교육부 장관이 결정해야 할 일”이라며 “정해진 절차와 법적 근거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유 부총리는 “설립 취지에 맞지 않게 고교 서열화를 심화시키고 입시 경쟁을 부추기는 자사고는 재지정 평가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며 그렇지 않은 학교는 정상 운영될 것”이라고도 했다. 교육부는 각 시·도교육청에서 청문 절차를 거쳐 평가 결과를 제출하면 ‘특목고 등 지정위원회’를 연 뒤 동의 여부를 결정한다.상산고, 동산고와 달리 울산 현대청운고와 경북 포항제철고는 재지정 평가에서 기준 점수인 70점을 넘겨 지정 기간이 연장됐다. 전남 광양제철고와 경북 김천고도 재지정 평가를 통과했다. 정상적인 평가 절차를 거친 자사고들은 재지정 평가에서 문제없이 기준 점수를 넘어서고 있다는 게 교육계 관계자들 설명이다. 문제는 13개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앞둔 서울 지역이다. 조 교육감은 2014년 재지정 평가 때 6개 학교의 자사고 지정 취소를 시도한 전례가 있다. 당시에는 교육부 제지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국회 교육위원회는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자사고 지정 취소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다. 회의에는 유 부총리를 비롯해 김 교육감, 조 교육감 등 5명의 교육감이 참석할 예정이다. 교육계 관계자는 “교육부 내부에서조차 일부 진보교육감이 자사고 폐지에 지나치게 열을 올리는 것에 반발하는 의견이 모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책 추진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