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규 KEB하나은행장, '디지털 어벤저스' 팀 꾸려 글로벌 사업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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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탐구지성규 KEB하나은행장의 수첩에는 직원들과 잡은 약속이 빽빽하게 적혀 있다. 새벽 운동을 시작으로 각종 업무 일정이 가득하다. 아무리 바빠도 1주일에 두 번 이상은 직원들과 땀을 흘린다. 주변에선 ‘강행군 아니냐’고 한마디씩 한다. 그럴 때마다 지 행장은 “한 명이라도 더 만나야 한다”며 웃는다. 어떤 경영전략도 직원들이 공감하지 않으면 시행하기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은행근무 30년 중 절반 해외서 보낸 '중국통'
은행 글로벌 인력 1세대
매일 새벽 직원들과 운동
지 행장은 체육복 차림으로 직원들 앞에 자주 ‘출몰’한다. 지난 12일엔 서울 북부영업구 지점장들과 새벽 5시에 만나 수유리 4·19민주묘지를 지나 백령사까지 1시간30분가량을 걸어 일출을 봤다. 곰탕 한 그릇을 먹으면서 업무 고민 등도 얘기했다. 25일에는 서울 구로영업본부 직원들과 꼭두새벽부터 걸었다. “함께 땀 흘리며 운동한 뒤 밥 한 끼를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엔 큰 힘이 있습니다. 단숨에 동료의식이 생기거든요.”은행 외길 30년…절반은 글로벌
지 행장은 KEB하나은행에서 ‘중국통’으로 불리는 글로벌 전문가다. 1989년 한일은행에 입행하면서 시작된 은행 근무 30년 중 절반인 15년가량을 해외에서 보냈다. 오랜 해외생활로 직원들과 만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가 행장 취임 후 직원들과의 소통 기회를 마련하는 데 몰두하는 이유다.
KEB하나은행(당시 하나은행)은 지 행장에겐 두 번째 직장이다. 1991년 하나은행 영업준비사무국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제부, 외환기획관리팀 등을 거쳐 2001년 하나은행 홍콩지점에 발령이 나고는 줄곧 해외에서 경력을 쌓았다.지 행장은 스스로를 ‘은행에서 글로벌 전문인력으로 육성된 1세대’라고 말한다. 중국에서 사업을 개척하면서 보고 느낀 게 큰 자산이 됐다고 했다. 2003년 겨울 중국 선양으로 발령 났을 때 느낀 막막함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요즘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선양 그 맨땅에서도 해냈는데 이쯤이야’라는 생각으로 주먹을 쥔다. 당시 선양에는 하나은행의 기반이 없었다. 이리저리 뛰어다닌 끝에 선양분행을 개점했다. 이후에도 도전 과제는 쏟아졌다. 2006년 말에는 중국하나은행 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베이징에서 밤샘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인에게 버금가는 중국어 실력을 갖추게 됐다. 지 행장은 중국어뿐 아니라 영어 일본어 베트남어 등을 구사한다. 어학능력이 더해지면서 해외에서 업무 역량은 날로 커졌다.
2014년에는 하나은행 중국유한공사 행장이 돼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중국법인 통합을 주도했다. 일찌감치 12개 분행의 분행장을 모두 중국인으로 교체하는 현지화를 시도했다. 역량 있는 현지인을 채용하기 위해 삼고초려하기도 했다. 현지화는 장기 성장 전략으로 효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혁신을 위해서는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 행장의 경영철학도 이때 경험에서 생겨났다.
은행을 디지털 정보회사로지 행장은 말뿐인 변화를 싫어한다. 직원들에게도 “변화 방향을 제대로 이해하고 최선을 다해 추진해야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고 조언한다. 잔소리로 오해받을 때도 있지만 크게 의식하지 않는 편이다. 그는 “어떤 변화를 도모할 때 동료와 이해관계자들의 공감, 협력, 적극적인 참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지 행장이 세운 목표는 디지털 정보회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더 이상 기존의 은행 영업방식만으로는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다. 특히 국내 시장은 제로섬 게임이어서 변화가 절박하다는 판단이다. 그는 정보통신기술(ICT)과 글로벌을 결합한 새로운 사업모델을 내놓겠다는 계획이다.
2025년까지 전체 이익의 40%를 해외에서 달성하겠다며 ‘글로벌 2540’이란 프로젝트도 만들었다. 이를 위해 글로벌디지털전략협의회를 신설했다. 더 속도감 있는 글로벌 디지털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다. 은행 내 그룹별 디지털 전문 인력으로 ‘디지털 어벤저스’팀도 꾸렸다. 지 행장은 “직원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리더의 중요한 임무”라고 강조했다. 직원들이 수시로 협업하면서 집단지성을 발휘하면 폭발적인 성장까지 가능할 것으로 그는 내다보고 있다.최근엔 ‘KEB하나은행 꼰대를 논하다’라는 캠페인도 시작했다. 세대 간 수평적 소통을 가로막는 ‘꼰대 문화’에 대한 이슈를 제기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같은 방향을 향해 뛰자는 취지다.
장점은 ‘강철 체력’…경영도 마라톤 하듯
지 행장은 누군가 장점을 물어볼 때면 ‘강철 체력’이라고 대답한다. 강한 체력이 있기 때문에 업무에 집중할 수 있고 직원들도 열심히 만날 수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열심히 일하려면 체력 관리는 기본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지난 4월부터 KEB하나은행 서울 을지로 본점 6층에 있는 체력단련실은 불이 꺼지지 않는다. 지 행장이 365일 24시간 운영하도록 지침을 바꿨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바쁜 일과 중에도 수시로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관리자급 미만 직원들만 이용 가능하던 방침도 바꿨다. 그는 매주 한 번 새벽 5시에 이곳에서 본부장들과 운동을 한다.
직원들 사이에서 지 행장의 별명은 ‘지기정’이다.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의 이름에 지 행장의 성을 붙인 것이다. 지 행장이 평소 마라톤을 즐기는 데다 주변에도 적극 권유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라톤 풀코스를 2시간 중반에 완주한 경험도 수차례 있다. 그래서 이 별명을 좋아한다. 지 행장은 “마라토너처럼 골라인을 향해 우직하게 뛰고 걷는 이미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경영 계획도 마라톤 완주 계획을 세우듯 촘촘하게 짠다. 지 행장은 취임하자마자 메모지에 임기 날짜 730일(2년)을 적었다. 직원 1만3000명을 임기 날짜로 나눠 하루에 18명씩, 한 달에 최소 540명은 만날 수 있도록 운동 계획을 짰다. 오는 28일에는 취임 100일을 맞아 임원들과 북한강에서 조정 경기를 하기로 했다.
KEB하나은행은 요즘 사내 분위기가 역동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은행 안팎에선 시중은행장 중 최연소(1963년생)인 지 행장의 역할이 크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가 올해 정한 경영 키워드는 ‘혁고정신(革故鼎新)’이다. 옛것을 뜯어고치고 솥을 새것으로 바꾼다는 뜻이다. 지 행장은 그동안 쌓은 글로벌 감각을 앞세워 변화를 주도할 계획이다.
■ 지성규 KEB하나은행장 프로필△1963년 경남 밀양 출생
△1982년 밀양고 졸업
△1989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89년 한일은행 입행
△1991년 하나은행 영업준비사무국
△1998년 외환기획관리팀장
△2001년 홍콩지점 차장
△2004년 선양지점장
△2007년 중국유한공사설립단 팀장
△2010년 하나금융지주 차이나데스크팀장
△2011년 하나금융지주 글로벌전략실장
△2014년 하나은행 경영관리본부 전무
△2014년 하나은행 중국유한공사 행장(전무)
△2018년 글로벌사업그룹장(부행장)
△2019년 3월~KEB하나은행장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