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대통령 인터뷰] 영변 핵시설 폐기가 비핵화의 첫걸음 강조

건물만 390개인 북핵 '심장부'…폐기 시 핵능력 크게 위축될 듯
文대통령 "비핵화의 정의가 향후 협상 핵심"…미국은 '영변+α' 요구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북한이 완전히 폐기할 경우 '비핵화의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간주할 수 있다고 밝힌 '영변'은 북한이 공식 인정하고 국제사회가 실제 확인한 유일한 핵시설이다.미국은 영변 외에 핵시설이 더 있다고 보고 '영변 플러스알파(+α)'를 요구하고 있지만, 북핵개발의 '심장부'로서 영변이 차지하는 위상이나 비중을 고려하면 영변 폐기가 비핵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합뉴스 및 세계 6대 뉴스통신사 합동 서면인터뷰에서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포함한 영변의 핵시설 전부가 검증 하에 전면적으로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비핵화 협상이 본격화되면 북한이 어떤 조치를 완료했을 때를 실질적인 비핵화가 이루어진 것, 다시 말해 '되돌릴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한 것으로 간주할지를 결정하는 것이 협상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영변 핵 시설 폐기를 실질적인 비핵화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북미 간 시각차는 지난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의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영변 폐기의 대가로 사실상의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원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영변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봤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하노이 회담 직후 인터뷰에서 이런 '미국식 계산법'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우리가 제시한 영변 핵시설이라는 게 만만찮은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영변에는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는 5㎿급 원자로, 플루토늄 재처리시설, 우라늄 농축시설 등이 있다.

원자로뿐 아니라 방사화학실험실과 동위원소 생산가공연구소 등 핵 개발 관련 실험 및 연구시설도 갖춘 핵 개발의 산실로 390개 이상의 건물이 존재하는 대단지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오래된 시설로 생색을 내려 한다고 주장하지만, 북한이 지난 몇 년간 영변의 우라늄 농축시설 규모를 배로 확장했다는 추정이 나오고 있는 만큼 영변 핵시설이 완전 폐기되면 상징적 의미뿐 아니라 실질적 효과가 크다는 평가가 있다.이런 평가는 미국이 원하는 '빅딜'과 북한이 생각하는 '스몰딜' 사이에서 중간 규모의 서너개 합의를 이루고 단계적으로 이행하는 이른바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을 추진하는 정부 구상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비핵화의 첫걸음으로 평가하고 미국이 이에 걸맞은 상응조치를 취한다면 지속해서 다음 단계의 핵폐기와 상응조치를 엮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판단인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북한이 영변 외의 장소에서 우라늄 농축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해왔다.

고농축우라늄은 대규모 재처리시설 등이 필요한 플루토늄보다 작은 공간에서 만들 수 있어 훨씬 숨기기 쉽다는 것이다.

2010년 11월 북한 당국의 초청을 받아 미국 과학자로는 유일하게 영변 우라늄농축시설을 방문한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는 북한이 단기간에 영변 핵시설을 완성한 점에 비춰 파일럿 시설(pilot facility) 등 추가 핵시설이 존재할 가능성을 일찌감치 제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하노이 회담 결렬과 관련,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북한 내 핵시설 5곳 중 1∼2곳만 폐기하려 했다고 말했다.이런 기조를 고려하면 북한이 영변을 시작으로 완전한 비핵화를 할 것이라는 신뢰할만한 조치를 제시하지 않는 이상 미국이 영변 폐기를 실질적인 비핵화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