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균의 아버지'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 별세

"한국이 살 길은 과학기술뿐"…건강사회 건설 꿈 이뤘다

1971년 야쿠르트 국내 첫 출시
'야쿠르트 아줌마'로 일자리 창출
식품업계 최초 중앙연구소 설립
국내 유산균 발효유 시장을 개척한 윤덕병 한국야쿠르트 회장이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1927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윤 회장은 건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69년 당시 건국대 축산연구소장을 맡고 있던 사촌 형 고(故) 윤쾌병 교수와 함께 한국야쿠르트를 창업했다. 국내 발효유산업의 선구자였다. 그는 “우리나라 축산의 미래가 우유 가공업에 달려 있다”며 ‘건강사회 건설’을 창업 이념으로 삼았다. 유산균이라는 개념이 없던 1971년 야쿠르트를 시장에 내놨다.여성 일자리를 창출한 것도 윤 회장의 공으로 꼽힌다. 주부들을 대상으로 ‘야쿠르트 아줌마’ 제도를 도입해 국내 유통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서울 종로 지역에서 47명으로 시작한 야쿠르트 아줌마는 1978년 3000명, 1998년 1만 명을 넘어섰다. 이 판매조직에서 일하는 인원은 현재 1만1000명에 달한다.

식품업계 최초로 중앙연구소도 세웠다. 1976년 설립한 한국야쿠르트 중앙연구소는 20년 뒤 자체 유산균을 개발해 유산균 국산화 시대를 열었다. 이전까지 일본 등에서 수입한 유산균 종균으로 발효유를 생산했지만 1996년 자체 프로바이오틱스를 개발, ‘유산균 독립’을 선언했다.

윤 회장은 “자원이 없는 한국이 살아갈 방법은 과학기술밖에 없다”는 신념으로 기업을 이끌며 사회공헌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한국야쿠르트는 1979년부터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를 단독 후원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주력 사업 매출이 부진해 회사의 마케팅 비용과 부대비용을 줄였지만, 이 대회는 계속 후원했다. 그는 “어려운 시기일수록 과학 인재 양성이 중요하다”고 임원들을 설득했다.매년 전국 초·중·고교생 9만여 명이 참여하는 이 대회는 ‘발명가의 등용문’이 됐다. 지금까지 1만여 명의 청년 발명가를 육성했다. 지금은 흔해진 장난감 가게의 비눗방울총은 1979년 첫 대회에서 금상(한국야쿠르트사장상)을 받은 임성무 군의 발명품이었다. ‘물 튐 방지 밑창’과 ‘물 쏟음 방지 병 내부마개’ 등도 대회에서 상을 받은 뒤 특허를 냈다.

창업 초기부터 전 임직원이 참여하는 사회봉사단 ‘사랑의 손길펴기회’를 조직해 양로원과 보육원 등 소외된 곳을 찾았다. 그는 “우리가 십시일반으로 이웃에게 도움을 줄 때 이 세상은 좀 더 따뜻해질 것”이라고 항상 말했다. 2010년에는 사재를 출연해 저소득층 자녀에게 학자금을 지원하는 우덕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윤 회장은 아낌없는 나눔을 실천한 노력을 인정받아 1988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2년 보건대상 공로상, 2008년 한국경영인협회 가장 존경받는 기업인상 등을 받았다.유족으로는 윤호중 전 한국야쿠르트 부회장이 있다. 빈소는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이며 발인은 28일 오전 6시.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