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서울 청약시장 문 닫힌다…非강남까지 줄줄이 후분양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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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發 후분양 도미노…흑석뉴타운·강북도 저울질
분양 공백 불가피…'분양가상한제' 카드 나올 수도

◆흑석뉴타운까지 ‘후분양 도미노’서울 동작구 흑석뉴타운3구역조합은 8월 예정이던 일반분양 계획을 연기했다. 조합은 HUG의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 전환을 검토 중이다. 인근 단지의 분양가 때문이다. 현충원을 사이에 두고 있는 사당3구역(‘이수푸르지오더프레티움’)이 지난 21일 3.3㎡당 평균 2813만원에 분양보증서를 발급받았다. 흑석3구역이 당장 올여름 분양한다면 이 가격 이상으로 분양가를 책정할 수 없다. 3.3㎡당 3200만~3600만원대인 주변 아파트 시세에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다.

흑석3구역 조합 관계자는 “HUG 기준대로라면 조합원 분담금이 늘어나기 때문에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후분양을 하기 위해 시공사와 협의를 시작했다”고 전했다. 조합은 공사 기간 동안의 이자비용 등을 감안한 향후 분양가가 3.3㎡당 4100만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후분양을 하면 HUG의 분양보증을 받지 않아도 된다. 사업 시행자인 조합이 분양가를 자유롭게 책정할 수 있는 셈이다. 흑석9구역 조합 내부에선 준공후분양까지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분양은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뉘는데, 아파트 골조가 3분의 2 이상 오른 상태에서 분양하면 건설사 두 곳이 연대보증을 서야 한다. 하지만 준공후분양일 땐 보증 자체가 필요 없다. 흑석9구역 시공사인 롯데건설은 어떤 방식이든 받아들일 생각이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분양가와 분양시기에 대해선 조합의 의견을 따르기로 시공계약 당시 명시했다”며 “조합이 원하는 최적기에 분양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북에서도 후분양으로 선회하는 단지가 등장했다. 을지로 옆 세운3구역을 재개발하는 ‘힐스테이트세운’은 모델하우스 개관을 코앞에 두고 분양 일정을 전격 중단했다. HUG가 주변의 입주 10년차 아파트 시세를 기준가로 내밀어서다. 시행사는 3.3㎡당 평균 3200만원대를 제시했지만 HUG는 2700만원대로 낮출 것을 요구했다. 전용 59㎡ 안팎 899가구가 나올 예정인 이 단지의 분양가가 3.3㎡당 500만원 내려간다면 분양수입은 1000억원가량 감소한다. 결국 시행사 더센터시티와 시공사 현대엔지니어링은 후분양 검토에 들어갔다.
강남 주요 재건축 사업은 일찌감치 후분양 체제로 돌아섰다. 상아2차와 신반포3차·경남아파트 등 대어급 재건축 단지들은 최근 후분양을 확정했다. 대치동 구마을 1지구와 반포우성도 후분양을 저울질 중이다. 역대 최대 규모 재건축인 둔촌주공 또한 일반분양 물량 5000여 가구 가운데 일부 후분양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반기 예정이던 서울 새 아파트 분양 물량의 대부분은 한참 뒤로 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파트값을 낮추겠다며 후분양제 확대를 장려하던 정부로선 난감한 상황일 수밖에 없다. 외려 분양가가 더 오르는 게 기정사실이 돼서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최근 토론회에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가능성을 시사한 게 이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공공택지엔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지만 재건축·재개발 같은 민간택지는 사실상 적용이 불가능하다. 정부가 2017년 말 ‘주택법’ 개정을 통해 요건을 낮췄지만 여전히 기준이 까다로워서다. 현행 주택법은 최근 3개월 동안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면서 △최근 1년 평균 분양가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하거나 △직전 2개월 청약 경쟁률이 5 대 1 또는 국민주택규모(전용 85㎡) 이하 경쟁률이 10 대 1을 초과하는 경우 △또는 최근 3개월 동안의 주택거래량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한 경우 해당 지역 민간택지에 분양가 상한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마저도 정비사업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하지 않은 곳만 대상이 된다. 법 개정을 하지 않고선 당장 서울 부동산시장에 적용하기 힘든 셈이다.하지만 강행할 경우 파괴력은 상당할 전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위원은 “정부가 전격적으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카드를 꺼낸다면 재건축·재개발의 사업성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며 “2010년대 초반처럼 아예 사업이 멈춰서는 곳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