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세기의 核담판' 分단위 추적…두 정상은 위기 통제 못했다

1962

마이클 돕스 지음 / 박수민 옮김
모던아카이브 / 640쪽 / 3만2000원
1961년 6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난 케네디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 /모던 아카이브 제공
“지난주에 이곳(쿠바 섬)에서 공격용 미사일 기지 다수가 건설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미국은 쿠바에서 발사된 핵미사일이 서반구에 있는 어떤 나라를 공격하더라도 미국에 대한 소련의 공격으로 간주하고 전면적인 보복 대응에 나설 것입니다.”

1962년 10월 22일 오후 7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백악관 집무실에서 TV로 생중계된 담화문을 통해 이렇게 발표했다. 아울러 쿠바에 대한 해상봉쇄조치를 취했다. 그 사이 전략공군사령부는 핵전쟁 두 단계 전인 ‘데프콘(방어준비태세)3’에 돌입했다.백악관의 발표는 1주일 전부터 극비리에 토론과 회의를 거듭한 끝에 나온 결정이었다. 소련이 미국 남부 해안에서 160㎞도 떨어지지 않은 쿠바에 핵미사일을 몰래 배치한 사실을 U-2기의 공중정찰로 알아낸 미국은 긴박하게 움직였다. 대통령과 그가 가장 신임하는 자문위원 12명으로 구성된 엑스콤(ExComm·국가안전보장회의 자문위원회)은 언론에 일절 노출되지 않은 채 점점 악화하는 위기에 관해 토론했다. 매파의 공습 및 침공 주장도 만만찮았다.

하지만 케네디는 핵전쟁을 우려했다. 쿠바 봉쇄만 해도 소련과 쿠바 어느 쪽에서든 도발하면 핵전쟁으로 치달을 우려가 충분했던 터였다. 사태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백악관, 크렘린, 쿠바에선 시시각각 상대의 동태를 파악하느라 분주했다. 인류 최초이자 최후가 될 핵전쟁이 냉전 시대의 최강국 미국과 소련의 지도자에 의해 터지느냐 마느냐 하는 시간이었다.

《1962》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위기로 손꼽히는 쿠바 미사일 위기가 전개됐던 1962년 10월 16일부터 28일까지의 13일간 인류가 핵전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건을 다룬 책이다. 워싱턴포스트의 베테랑 기자 출신인 저자 마이클 돕스는 수많은 논문, 책, 기사, 다큐멘터리, 영화 등으로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뤘지만 시간대별로 사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의 설명은 없었다며 사건의 전개 과정을 분 단위로 추적한다.

책은 ‘위기의 13일’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이야기를 시작해 케네디가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흐루쇼프에게 최후통첩을 보내기까지의 1주일을 제1장에 압축하고,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22일(월요일)부터 26일(금요일)까지는 6개 장으로 다뤘다. 이어 위기가 절정에 달하는 27일 ‘검은 토요일’과 위기가 해소되는 28일 아침까지를 분 단위로 설명하는 데 책의 절반을 할애했다.

미국이 해상을 봉쇄한 가운데 핵탄두를 실은 소련 잠수함과 선박들이 쿠바로 향했다. 이에 대한 미국 해군과 공군의 감시 및 추적도 더욱 촘촘해졌다. 어디 한 곳에서라도 충돌하면 바로 전쟁, 세계전쟁, 핵전쟁으로 비화할 위험이 충만한 상태였다. 쿠바 동쪽 끝에서 반경 900㎞에 있는 격리선으로 소련 선박 키몹스크와 유리 가가린이 접근하면서 긴장은 더욱 고조됐다. 격리선을 넘을 경우 미국이 제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월 24일 이들 선박이 방향을 틀었거나 멈춰섰다는 소식에 엑스콤 자문위원들은 크게 안도했다. 딘 러스크 국무장관은 먼저 눈을 깜빡이는 사람이 지는 눈싸움을 떠올리며 “방금 상대방이 눈을 깜빡거렸다”고 했다.또 하나의 위기, 더욱 큰 위기는 검은 토요일에 찾아왔다. 미국은 소련이 쿠바에서 미사일을 철수시키면 미국은 터키에 배치한 미사일을 포기하겠다고 은밀하게 제안해 위기는 끝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쿠바 주둔 소련군은 흐루쇼프의 허락도 없이 미군 U-2기를 격추했다. 소련군 핵무장 잠수함의 함장은 핵어뢰까지 쏠 뻔했다. 모두가 숨을 죽인 순간, 또 다른 미군 U-2기는 소련 영공을 500㎞나 침범했다. 보고를 받은 케네디는 이렇게 내뱉었다. “꼭 말귀를 못 알아먹는 개자식이 있다니까.”

소련의 미사일 철수와 미국의 해상봉쇄 해제로 위기는 해소됐다. 하지만 이런 핵담판과 관계없이 인류는 핵전쟁의 비극을 맞이할 뻔했다. 저자는 “중요한 것은 케네디와 흐루쇼프가 사건을 통제하기를 ‘원했는지’가 아니라 ‘통제할 수 있었는지’다”고 강조한다.

위기가 해소된 이후 대부분 미국인은 전쟁 없이 소련 미사일을 철수시킨 케네디를 승자로 꼽았다. 최악의 패자는 피델 카스트로로 보였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케네디는 그 후 1년 남짓 만에 ‘쿠바를 위한 페어플레이’ 소속의 활동가에 의해 암살당했고, 흐루쇼프도 실각했다. 냉전의 무기 경쟁은 확대됐다. 저자는 “핵무기가 있는 세상에서 전통적인 군사적 승리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서로 간에 수백만 명, 수천만 명의 희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100명의 관련자 인터뷰와 사건현장 답사, 기밀해제 자료 분석 등을 통해 촘촘하게 복원해낸 ‘13일간의 위기’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읽힌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