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가전매장의 부활…다이슨 청소기·LG 스타일러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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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빅3 올들어 매출 20%↑백화점 가전제품 매장은 ‘계륵’ 취급을 받았다. 매출 비중도 낮고, 방문객도 많지 않았다. 매장은 주로 한갓진 곳에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없앨 수도 없었다. 신혼부부, VIP 회원 등 ‘큰손’ 고객이 간간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가심비 열풍에 프리미엄 가전 인기
신뢰성 높은 백화점서 구매 선호
요즘 백화점 가전 매장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 매출은 크게 늘고 찾는 사람도 많아졌다. 백화점들은 가전 매장 면적을 키우고, 좋은 자리로 전진 배치하기 시작했다. 과거 백화점의 주력이었던 패션 매출 감소를 메워주는 것을 넘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가전 매출 20% 이상 껑충
올 들어 국내 주요 백화점의 가전 매출이 크게 늘고 있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백화점 빅3’ 모두 올 1~5월 가전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늘었다. 현대백화점은 증가율이 30%에 육박했다. 올 1분기 백화점 전체 매출 증가율은 0.5%에 그쳤다. 해외 명품과 함께 가전이 백화점 매출의 ‘마이너스 성장’을 막았다.백화점 가전 매출 증가는 ‘신가전’으로 불리는 건조기 의류관리기 등이 주도했다. 현대백화점이 올 들어 지난 25일까지 품목별 매출 증가율을 조사한 결과 건조기(128%), 의류관리기(81%), 무선청소기(76%), 공기청정기(72%) 순으로 높았다. 선풍기, 헤어드라이어 등 소형 가전 매출도 22% 증가했다. TV, 냉장고, 세탁기 등 전통 가전도 10%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홍영 현대백화점 가전바이어는 “공기청정기, 건조기, 의류관리기 등이 필수 가전으로 떠오르면서 가전 상품군의 전체 파이를 키웠다”며 “여기에 신혼부부, 1인 가구 등이 프리미엄 가전을 선호하는 현상이 강해져 가전 매출 증가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프리미엄 가전 선호 영향백화점 가전 매장의 ‘부활’은 소비 양극화 트렌드와 맞닿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가성비’(가격 대비 품질)가 뛰어난 제품은 가격이 저렴한 온라인에서,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가 중시되는 프리미엄 제품은 백화점에서 구매하는 현상이 짙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전제품이 고급화하면서 이런 트렌드는 더 강화되고 있다. 50만원에 육박하는 다이슨 헤어드라이어와 발뮤다 선풍기 등이 대표적인 예다. 헤어드라이어나 선풍기 등은 단가가 낮아 오래전부터 백화점 매대에서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의 백화점에서 판매한다. 여기에 100만원대 일렉트로룩스 로봇 청소기, 드롱기 커피머신 등도 백화점의 인기 가전으로 떠올랐다.백화점들이 최근 1~2년 새 경쟁적으로 VIP 회원의 최소 기준을 낮춘 것도 가전 매출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가전은 단가가 높아 백화점 VIP 회원 등급 획득에 유리하다. 과거엔 연 2000만원어치 이상 구매해야 VIP 회원 자격이 주어졌지만, 요즘엔 400만~500만원 정도의 실적만 있어도 VIP 회원이 될 수 있다. VIP 회원이 되면 등급에 따라 무료 주차, 전용 라운지 이용, 1 대 1 상담 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이왕 사야 하는 제품이라면 백화점에서 구매해 VIP 등급을 받으려는 소비자들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백화점 제품이 더 좋다’는 인식도 확산되고 있다. 실제 상당수 가전은 백화점 모델과 가전 양판점이나 온라인에서 판매되는 모델이 다르다. 자동차로 치면 백화점 제품은 ‘풀옵션’인 경우가 많고, 양판점이나 온라인에선 옵션이 없거나 적은 가전이 다수다. 여기에 백화점이 사후 관리도 대행해주는 만큼 좀 더 비싼 가격에도 지갑을 연다는 설명이다.
명당 자리에 가전 전진 배치
백화점들은 가전 매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은 최근 전체 리뉴얼 공사를 하면서 가전 매장에 가장 공을 들였다. 지난 4월 새로 문을 연 가전 매장에는 다이슨 플래그십 스토어, 밀레 식기세척기 시연회장 등 체험형 콘텐츠가 처음 들어갔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매장은 규모를 두 배 이상 키웠다.
신세계백화점은 강남점 명품 매장 한복판에 이례적으로 가전을 선보이기도 했다. 작년 11월 LG전자의 프리미엄 가전 ‘시그니처 키친 스위트’ 팝업 스토어(임시매장)를 열었다. 루이비통 버버리 프라다 등 해외 명품이 신제품을 선보였던 자리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들어서는 경기점을 시작으로 강남점, 센텀시티점 등에 삼성전자 프리미엄 스토어를 입점시켰다. 체험 공간을 늘리고, 고급 제품 위주로 배치했다. 이케아처럼 실제 거주 공간처럼 꾸며놓은 ‘쇼룸’ 형태의 매장도 처음 선보였다.
현대백화점도 삼성전자와 함께 프리미엄 스토어를 확대하고 있다. 킨텍스점·목동점·판교점·신촌점·미아점 등 다섯 곳에 프리미엄 매장이 들어섰다.백화점 가전 매장이 활력을 되찾은 것과 달리 가전 양판점은 온라인에 시장을 잠식당하고 있다. 업계 1위 롯데하이마트는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약 41% 감소했다. 온라인에 대응하기 위해 판매가격을 일부 내리고, 판촉 행사를 늘린 게 실적 악화로 이어졌다. 롯데하이마트는 기존 매장을 프리미엄 가전 매장으로 전환해 고급화하는 소비 트렌드에 대응할 계획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