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안전 위협하는 낡은 지하 SOC, 전면 점검 서둘러야

송유관·통신구 20년 이상이 90%…땅 밑이 '지뢰밭'
지하 지도도 부정확…지하 개발 시 안전사고 우려도
시설 정비, 도시 경쟁력 강화와 고용창출 계기 삼아야
낡은 지하 사회간접자본(SOC) 시설물들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 노후 상·하수도관, 가스관, 열수송관 등이 언제 어디서 대형 사고를 유발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제대로 관리하지 않은 탓이다.

상수도관 노후와 관리 부실이 겹치면서 ‘수돗물 오염’ 공포가 한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인천의 ‘붉은 수돗물’에 이어 서울 문래동과 경기 김포·평택·안산 일부지역에서는 ‘흙탕물 수돗물’ 사태가 발생했다. 상수도관 노후도가 심각한 수준이지만 대다수 지자체들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 수돗물에 대한 불신은 쉽사리 가시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전국 상수관로 20만3859㎞ 가운데 43%(8만7660㎞)가 20년이 넘었지만, 전국 지자체들이 2017년 교체한 상수도관은 1348㎞에 불과했다. 낡은 상수도관은 인명사고를 유발하는 싱크홀(sinkhole·지반침하)의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에만 누수로 인한 토사 유출로 전국에서 140건이 넘는 싱크홀이 일어났다.작년 서울 KT아현지사 화재로 관심이 집중됐던 지하 통신구와 도시가스관, 열수송관, 송유관 등의 노후화도 심각하다. 한국시설안전공단 등에 따르면 송유관·통신구 등은 설치 후 20년을 넘긴 비율이 90%를 웃돈다. 하지만 SOC 시설 유지비는 선진국(SOC 예산의 50% 이상)에 훨씬 못 미치는 10% 안팎에 머물고 있다. 땅 밑의 낡은 시설들이 ‘지뢰밭’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행정당국이 지하 시설물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설물이 집중적으로 설치됐던 20~30년 전에는 지하공사에 필수인 지중맵을 작성한 경우가 많지 않았다. 설계도대로 시공된 시설물들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구도심 지하에서 상·하수도관과 가스관 등이 이리저리 뒤엉킨 경우가 적지 않은 이유다. 부실한 지하 정보에만 의존해 대규모 지하개발을 벌였다간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표방하고 있는 정부는 차제에 전국 지하 시설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 대대적인 조사 및 진단을 통해 지하 시설물 보수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수십 년을 내다보고 지하 SOC 사업을 시작하고, 오래된 시설물을 끊임없이 보수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도시 경쟁력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도 대거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SOC 사업 우선순위 조정도 시급하다. 한적한 곳에까지 도로를 까는 ‘지역 나눠주기식’ 사업과 소규모 체육관 등을 짓는 ‘생활형 SOC’ 사업이 ‘안전 투자’를 앞설 수는 없다. 이참에 중앙정부 따로, 지자체 따로인 각종 인프라에 대한 안전관리 주체와 책임 문제도 명확히 해야 한다. 국가 기반시설인 SOC는 일회성이 아닌 꾸준한 유지·보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