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러슨 전 美국무장관 "쿠슈너에 의해 종종 배제돼…화났다"

하원 비공개회의 증언록…"나도 모르게 글로벌 리더들과 회동"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을 지낸 렉스 틸러슨 전 장관이 재임 시절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으로부터 외교적 접촉 및 이슈와 관련해 종종 배제를 당했다는 증언을 내놨다.
쿠슈너 선임보좌관이 글로벌 리더들과 국무장관인 자신도 모르는 회동을 하거나 협상을 하는 것을 알로 놀란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는 것이다.

틸러슨 전 국무장관은 이 같은 증언을 지난 5월 미 하원 외교위 비공개 회의에서 했고, AP통신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들은 27일(현지시간) 당시 증언록을 토대로 이같이 보도했다.

틸러슨 전 장관의 증언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쿠슈너 선임보좌관이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 될 것으로 보인다. AFP통신은 이 같은 증언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에서의 쿠슈너 선임보좌관의 강력하고 비정통적인 역할과 틸러슨 전 장관이 재임 시절 직면했던 도전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쿠슈너 선임보좌관은 백악관에서 중동문제를 담당하고 있으며, 백악관이 최근 공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 해결 등 중동평화를 위한 경제계획, '번영을 향한 평화'(peace to prosperity)도 쿠슈너 선임보좌관이 주도했다.

WSJ에 따르면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와 쿠슈너 선임보좌관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지도자들과 만찬 회동을 가졌지만, 틸러슨 전 장관은 초대는커녕 회동 자체도 통보받지 못했다. 당시 쿠슈너 선임보좌관 등은 사우디 등으로부터 테러단체 지원을 이유로 한 카타르 봉쇄 계획을 전해 들었지만 이를 틸러슨 전 장관에게 알리지 않았다.

틸러슨 전 장관은 이에 대해 "화가 났다"면서 "나는 발언권을 갖지 못했고 국무부의 견해도 결코 표명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쿠슈너 선임보좌관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를 종종 만났고, 한번은 자신이 무함마드 왕세자와 논의해온 미-사우디 미래 관계 로드맵 관련 문건을 논의하기 위해 사우디 관리들과 만날 것을 틸러슨 전 장관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쿠슈너 선임보좌관의 해외 방문은 그가 국무부나 해외 주재 미 대사관과 어떤 협의도 하지 않고 이뤄져 우려를 낳았다면서 자신이 그 같은 문제를 제기했지만 바뀐 것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틸러슨 전 장관은 한번은 워싱턴DC의 한 레스토랑을 찾았다가 우연히 같은 레스토랑에서 쿠슈너 선임보좌관이 멕시코 외교장관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레스토랑 주인이 알려준 것이다.

틸러슨 전 장관은 자신이 멕시코 외교장관에게 다가가 큰 미소를 지으며 "워싱턴DC에 온 것을 환영한다.

다음에 올 때는 내게 전화를 달라"고 하자 놀란 멕시코 외교장관의 안색이 변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틸러슨 전 장관은 재임 기간 대북문제나 이란핵협정 등 각종 주요 외교·안보 현안과 정책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과 이견을 보여 끊임없는 경질설에 시달리다 지난해 3월 결국 경질됐다.

재임 시절인 2017년 7월에는 미국의 핵 능력 강화를 추진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멍청이'(moron)라고 비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아이큐(IQ) 테스트를 해보자"고 면박성 언급을 하기도 했다.

틸러슨 전 장관은 퇴임 후인 지난해 12월에는 휴스턴에서 열린 한 모금행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에게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자주 말했는데, 나는 그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만 그 방식으로는 할 수 없다'고 말해야 했다"면서, 그 이유는 "그가 말한 방식이 불법"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틸러슨 전 장관을 향해 "매우 멍청하고 게을렀다"면서 험담을 퍼부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