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어머니회 말고 '녹색부모회'로 바꿔주세요"…여성 위주 학부모 단체명에 반발하는 학부모들

주말 왁자지껄
교통지도를 하고 있는 녹색어머니회 회원.
지난 1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녹색어머니회 명칭을 변경해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둔 엄마로 “녹색어머니, 어머니폴리스라는 이름 자체에서 ‘엄마’가 우선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느낌이 든다”며 “이름 때문에 참여하고 싶어도 못하는 아빠들, ‘아빠는 안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갖는 아빠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녹색어머니회’처럼 학교에 소속된 학부모 단체 다수에는 ‘어머니’가 들어가 있다. 경찰과 협력해 등하교길 아동을 보호하고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어머니폴리스’와,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교육 봉사를 하는 ‘책 읽어주는 어머니회’ 등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녹색어머니회 명칭을 바꿔달라고 요청하는 게시글.
‘어머니회’라는 명칭이 아이들에게 육아는 ‘엄마의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맞벌이 가정이 보편화되면서 남성과 여성의 고정된 성역할이 사라진 세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아빠의 육아 참여를 제한한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사는 한부모 가정에게는 어머니 위주의 교육 참여 방식이 아이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아버지, ‘녹색어머니회’ 정회원 될 수 없어”

녹색어머니회(녹색어머니 중앙회)는 경찰청에 소속된 사단법인이다. 초등학교 앞에서 학생들의 등교길과 하교길에서 노란 깃발을 들고 교통을 지도하는 활동 등을 한다. 1969년 ‘자모 교통 지도반’으로 처음 생겨나 1971년 녹색어머니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남성이 경제활동을 하고 여성이 전업주부인 가정이 많았던 당시에는 어머니들이 아이들의 등교길과 하교길 시간에 맞춰 활동을 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결혼 후에도 일을 하는 여성들이 늘면서 ‘육아와 교육은 어머니의 몫’이라는 기존의 인식이 바뀌기 시작했고, 녹색어머니회를 비롯해 교육 관련 봉사 활동을 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워졌다.
초등학교 녹색어머니회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인터넷 카페 게시글.
하지만 녹색어머니회 창립 당시 명칭과 규정은 변함이 없다. 녹색어머니회 정관에 따르면 ‘초등학교에 재학중인 자녀를 둔 어머니’만 정회원이 될 수 있다. 아버지는 정회원이 될 수 없고, 활동을 한다 해도 자원봉사를 하는 형식으로만 참여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맘카페 등 인터넷에서는 일을 하는 어머니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교통지도 활동을 대신 해줄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게시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오전 8시30분~9시까지 30분간 1만5000원에 녹색어머니회 아르바이트하실 분을 구한다”는 게시글이 한 지역 카페에 올라왔다.

아버지와 함께 사는 한부모가정의 학생들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청원을 올린 한 초등학생 아버지는 “편부가정의 아이에게는 녹색어머니회라는 이름 자체가 상처가 된다”며 “녹색어머니회 이름을 녹색부모님회로 변경해달라”고 호소했다.
녹색어머니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정관. 정회원을 '초등학교에 재학하는 자녀를 둔 어머니'로 한정하고 있다.
서울시도 ‘녹색학부모회’ 사용 권고

‘어머니회’라는 단체명과 활동에 대한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해 3월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돌봄과 교육은 엄마의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준다”는 등의 이유로 초등학교에 어머니 동원을 금지해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1만5614명이 동의했다. 또 지난해 7월에는 서울시가 서울시 국어 사용 조례를 통해 ‘녹색어머니회’를 ‘녹색학부모회’로 바꿔 쓸 것을 권고했다.

녹색어머니회 측은 “녹색어머니회는 역사가 50년 된 조직으로 어머니회라는 이름은 상징적인 의미일 뿐”이라며 “각 학교에서는 ‘녹색학부모회’, ‘녹색교통지도대’ 등 자율적으로 이름을 붙일 수 있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많은 초등학교에서 아직도 녹색어머니회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한 학교는 홈페이지 게시판의 이름을 ‘녹색학부모회’로 만들어놓고 운영 계획 등 관련 문서에는 녹색어머니회라고 표기하기도 했다.박철우 안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보통 시대가 변화하면서 사람들의 인식도 바뀌어 언어가 이를 따라가지만, ‘어머니회’처럼 사람들의 생각이 이미 변했는데도 단어가 아직 옛 사고대로 남아있는 경우가 있다”며 “육아와 성역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달라진 만큼 이같은 명칭 변경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