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미 판문점 회동] 북미 교착해소로 남북관계도 물꼬 틀까

北, 최근 南중재역 거부…南, 美에 주도권 양보하며 '북미회동' 공간마련
북미 정상의 30일 판문점 '깜짝 회동'을 통해 막혀 있던 북미관계에 돌파구가 열림에 따라 소강국면인 남북관계도 활기를 찾을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김정은 위원장과 회동한 뒤 기자들과 만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주도로 2∼3주간 실무팀을 구성해 협상을 하겠다"며 북미 실무협상 재개를 공식화했다.

정부는 지난해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서 남북관계를 지렛대로 고비마다 북미 간의 중재자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올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미관계가 냉각되면서 남북관계도 사실상 중단됐다. 북한이 남측과의 대화와 교류협력에 응하지 않으면서 최근에는 남측의 중재자 역할을 정면으로 부인하고 있다.

선전매체를 통해 문재인 대통령을 겨냥한 날 선 반응까지 내놓는 상황이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지난 27일 담화에서 북미대화는 남측이 참견할 문제가 전혀 아니라며 "협상을 해도 조미가 직접 마주 앉아서 하게 되는 것만큼 남조선 당국을 통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는 북한이 '하노이 노딜'로 남한의 중재자 역할에 회의감을 갖게 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작년 9월 문재인 대통령과의 평양 회담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 카드를 꺼냈지만, 이를 민생제재 해제와 교환하자는 북한의 협상안은 하노이 회담에서 미국으로부터 거부당했고 김 위원장의 위신도 떨어졌다.

북한은 조정된 형태로 계속되는 한미 군사훈련과, 대북제재의 틀 내에서 남북협력을 진척시킨다는 남한 정부의 태도 등에도 불만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다시 남북대화·협력에 응하려면 결국 북미관계에 숨통이 트여야 한다는 분석이 많았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4월 시정연설 "미국의 시대착오적인 오만과 적대시정책을 근원적으로 청산하지 않고서는 북남관계에서의 진전이나 평화번영의 그 어떤 결실도 기대할 수 없다"고 강조한 것에 이런 상황인식이 단적으로 담겨 있다.

정부도 "남북 간에 본격적으로 평화와 공동번영의 과제를 진척시키기 위해서도 북미관계의 진전이 병행되어야 한다"(김연철 통일부 장관)며 북미관계 재가동이 결국 근본적 해법이라는 인식을 드러내 왔다.

이번에 남한 정부가 판문점 북미 정상회동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며 회동 성사를 지원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것도 이런 이유로 보인다.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판문점행을 통해 남북미 3자 정상 회동이 이뤄지는 것이 가장 좋지만, 북미가 만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판단 하에 이번 회동 성사를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도권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넘기면서 일단 북미관계의 물꼬를 트고, 앞으로 남북관계 교착 해소의 계기로 만들어 가겠다는 구상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판문점행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공동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의 상봉, 대화, 그것이 앞으로 계속된 북미 대화로 이어져 나가는 그 과정으로서 큰 의미가 있다"며 "오늘은 북미간의 대화에 집중하도록 하고 남북 간의 대화는 다음에 다시 도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동에서도 판문점 자유의 집 앞에서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등 남북미 정상 세 명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연출됐다.

세 정상은 북미 정상의 양자회동 이후에도 자유의 집에서 나란히 걸어 나오면서 화기애애하게 대화했다.

김 위원장과 문 대통령 사이의 우호적인 관계도 여전함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다만 이날 본격적인 회동은 문 대통령이 빠진 채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둘이서만 진행했다. 남북미 세 정상이 한 공간에 있었지만 서로 마주 앉은 것은 북미 정상 뿐이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남한의 중재 역할이 예전만큼 가동되기 힘들 것임을 보여준다는 해석도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