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한 발짝 늦었다" 골든타임 놓친 고유정 경찰 수사

경찰청, 이달 중 '부실수사 의혹' 제주경찰 조사 예정
전문가 "국민 관점 과거 비해 높아져"…경찰·국민 여론 간 격차

'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의 피의자 고유정(36·구속)이 1일 재판에 넘겨졌지만, 경찰의 초동수사 미흡에 대한 비판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해 검찰 기소까지 이르게 했다고 자찬하는 반면, 수사 과정을 지켜본 국민은 부실한 초동수사로 아직 피해자 시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등 수사가 장기화 되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제주경찰은 결국 이달 중 경찰청 본청의 조사까지 받게 된다.

경찰청은 고유정 부실수사 의혹과 관련해 진상조사팀을 꾸려 제주경찰이 고유정사건 수사 과정에서 과오가 있었는지 사실관계를 확인한다는 방침이다.고씨는 지난 5월 25일 제주시 조천읍 한 펜션에서 전 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고씨가 범행을 저지른 지 6일만인 지난달 1일 고씨를 긴급체포했다.

경찰은 피의자를 이른 시일 내 잡았다고 자찬했지만 초동수사 미흡으로 고씨가 시신을 유기할 시간을 내어 주는 등 골든타임을 놓친 정황이 속속들이 드러났다.피해자 강씨가 이틀이 지나도록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가족은 지난 5월 27일 오후 6시 10분께 부랴부랴 경찰서를 찾아가 신고했고, 이어 2시간 뒤에 112로도 재신고했다.

경찰은 피해자가 마지막으로 고씨와 통화한 사실을 확인해 고씨에 대한 전화 조사를 했다.

당시 고씨는 경찰에 "(피해자와) 아이 면접교섭으로 25일 만났다.(피해자가) 덮치려고 했는데 미수에 그치자 당일 밤 먼저 펜션을 나갔다"고 허위 진술했다.

경찰은 실종 신고가 이뤄진 27일 밤 제주시의 한 마트 주차장에 피해자 차량이 범행 이후 사흘째 그대로 세워져 있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별다른 의심없이 피해자 차량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심지어 차량 블랙박스 영상조차 확인하지 않았다.
블랙박스 영상 확인은 실종신고 다음 날인 28일 오후가 돼서야 유족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경찰은 또 실종 신고 직후 사건 현장도 찾았지만, 모형 폐쇄회로(CC)TV만 확인했을 뿐 고씨의 수상한 모습이 찍힌 인근 단독주택의 CCTV를 확인하지 못했다.

피해자 남동생은 경찰의 초동수사에 문제 의식을 가졌고, 직접 인근을 뒤진 끝에 인근 단독주택의 CCTV 영상을 확인하고 경찰에 넘겼다.

실종신고 이후 나흘만이었다.

그 사이 고씨는 같은 날 해당 펜션에서 퇴실했으며, 다음 날인 28일 제주시 한 마트에서 종량제봉투 30장과 여행용 가방, 비닐장갑 등을 구입하고, 오후 8시 30분 제주항에서 출항하는 완도행 여객선을 타고 제주를 빠져나갔다.

경찰이 신고 초반 제대로 수사에 나섰다면 피의자가 제주를 벗어나 시신을 유기하기 전에 체포할 수도 있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다.

경찰은 검찰이 고씨를 기소한 이날까지 아직 피해자 시신을 찾지 못했다.

경찰은 특히 고씨가 범행 이틀 뒤인 지난 5월 27일 펜션을 떠나면서 인근 클린하우스 두 곳에 종량제봉투 5개를 나눠 버린 사실을 파악하고도 유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경찰은 지난달 22일 피해자 유족이 직접 펜션 인근 클린하우스 CCTV를 확인하고 나서야 고씨가 펜션 인근에서도 시신 일부를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종량제봉투를 버린 사실을 인정했다.

경찰은 또 지난달 28일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제주환경자원순환센터에서 고씨가 종량제봉투에 담아 유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피해자 시신을 찾기 위해 매립장 굴착 작업을 진행, 뼈 추정 물체 20여 점을 발견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다.

하지만 유기한 지 한 달이나 지나 해당 뼈 추정 물체가 피해자의 것일 확률은 낮은 상태다.

경찰은 또 수사 초기 범행 현장인 펜션 주인이 내부를 청소하겠다는 요청을 허락하는 등 수사의 기본인 범죄현장 보존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경찰은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며 여론의 화를 키웠다.

고유정사건 초동수사를 맡았던 제주동부서 소속 경찰관 5명은 지난 20일 경찰 내부 통신망인 '폴넷'에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수사 관련 입장문'이라는 제목에 글을 공동명의로 올렸다.
이 글은 박기남 제주동부서장 지시로 작성돼 게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실종 시 수색 매뉴얼에 따라 피해자의 휴대전화 최종 기지국 신호 위치를 중심으로 수색하는 등 초동수사를 제대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다만, 당시 한정된 인력과 시간 때문에 최종 기지국 신호를 중심으로 수색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혼한 부부가 어린 자녀와 있다가 자살 의심으로 신고된 사건에 대해 초기부터 강력사건으로 보고, 수사했어야 했다는 비판은 결과론적 시각에서 바라본 비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특히 고씨에 대해 현장검증을 하지 않은 데는 '야만적 현대판 조리돌림'을 우려한 박기남 동부경찰서장의 결단이 있었다고 말해 피의자를 감싸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에 분노한 여론은 지난달 26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 '제주동부경찰서장 및 담당 경찰관의 징계 및 파면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을 올렸고, 1일 낮 12시 현재 약 1만 7천명이 동의했다.

또 제주동부서 홈페이지 게시판에도 경찰 수사에 대해 비판하는 글이 쇄도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고유정 사건을 처음부터 봤을 때, 경찰은 평균적인 보통의 수사를 했다"며 "다만 일반 국민이 경찰 수사를 바라보는 기준과 범인의 범죄 지능이 과거와 비교했을 때 훨씬 높아지면서 '경찰이 못 했다'는 비판 여론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찰은 용의자를 특정하고 기소할 수 있게 했으니 제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민은 완벽하게 수사가 결론지어지기를 바란다"며 "특히 경찰이 내부망에 올린 입장문 등은 경찰 여론과 국민 여론 사이의 격차를 더욱 부추겼다.

수사 과정에서 사건을 다루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