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만세운동' 희귀기록…너무 허술하게 방치됐다

한국판 '안네의 일기', 독립운동가 어머니의 내방가사 14년 만에 찾아
김해 장유만세운동 주동 김승태 모친 조순남 여사 육필…기증 후 '행불'
100년 전 김해 장유지역 만세운동 과정을 주동자의 어머니가 내방가사 형식으로 쓴 '김승태만세운동가'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는 과정은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재나 기록물관리를 얼마나 허술하게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전국에서 들불처럼 일어나 해외까지 번졌던 3·1 만세운동은 규모나 파급력에서 엄청났지만, 관련 기록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사료로나 문학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이 자료 원본은 일부 연구자와 시의원 등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사장될 가능성도 컸다.

내방가사 형식의 특이성은 물론 주동자의 어머니가 일기나 취재일지식으로 만세운동 발발에서 아들 체포, 투옥, 재판, 석방 전 과정에다 자신의 심경을 곁들여 기록해 일제 눈을 피해 몰래 후손에 물려줬다는 점에서 한국판 '안네의 일기'란 평가를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기증한 지 14년, 100년을 견딘 한지는 보존처리가 시급하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 만세운동 내방가사 기증과 행방불명
김승태 선생 손자 김융일(77) 씨 친척이 김해시에 김승태만세운동가를 기증한 것은 2005년 3·1절 86주년 기념행사 때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으로 거주지인 부산에선 3·1절 행사 때마다 주요 참석인사로 예우를 받았던 김 씨는 고향에서도 행사가 열린다는 것을 안 뒤부터 장유 행사에 참석해왔다.
그런데 그날은 친척 형님이 증조할머니 조순남 여사가 남긴 김승태만세운동가 원본을 부시장한테 기증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전에 전혀 상의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국회의원을 비롯해 주요 참석 인사를 기억하고 자신의 눈앞에서 기증하는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고 김 씨는 회고했다.

친척 형님의 모친이 기록을 즐겨보곤 해서 가져갔던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3·1운동 행사장엔 평소 나오지 않던 형님이 직계 후손들과 상의도 없이 기증을 해버렸다는 것이다. 김 씨는 이후에도 그 문제로 집안에 분란이 생길까 봐 형이나 시청에 경위를 따지지도 않고 시에서 보관을 잘 해주겠거니 하고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 잊은 듯했던 자료 원본을 거론하게 된 것은 지난해 3·1운동 99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학술행사를 김해 관련 단체와 이광희 시의원, 이홍숙 창원대 외래교수 등이 논의하면서였다.

이 교수는 올해 시청에서 열린 3·1운동 100주년 학술회에서 '장유의 만세운동과 조순남의 김승태 만세운동가 관계 고찰'이란 제목으로 발표를 했고 지난해에도 발표 기회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자료 원본을 열람하려다 시청에서 "없다"는 연락을 받고 문화원 등 다른 곳으로도 수소문했지만 되돌아온 답은 같았다.

이에 따라 이 시의원은 지난해 4월 4일 본회의 5분 발언에서 '장유 4·12 기미독립의거'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김해시청 안을 다 뒤져서라도 자료 진본을 찾아낼 것을 촉구했다.

이 교수와 김 씨는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지난해 11월 시청을 방문, 내방가사 원본을 찾아 달라고 요청했다.

◇ 김해시의 허술하고 무책임한 기증 자료 관리
김해시가 본격적으로 김승태만세운동가 원본을 찾기 시작한 것은 이광희 의원이 문제를 제기한 지난해 4월께부터로 보인다.

시는 1년이 넘도록 5곳에 이르는 시청 문서고와 문화원 수장고, 김해민속박물관 수장고, 김해향교 등을 모두 뒤졌지만, 원본은 온데간데없었다.
지난 5월에는 보름여에 걸쳐 시 감사실에서 나서 2005년 기증 당시 행사 관련 부서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지만 모두 "모르겠다"는 답변뿐이었다고 시는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김 씨가 시 관계자로부터 기증 장면을 찍은 사진을 봤고, 연합뉴스가 정보공개청구를 거쳐 사진을 확인한 결과 당시 친척 형님이 부시장한테 표지가 없는 자료 원본을 건네는 장면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그렇지만 시는 어떤 이유에선지 사진을 확보하고도 내방가사 원본을 기증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대외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지난 5월 13일 김융일 씨 측이 시 홈페이지 '시장에 바란다'에 제기한 민원 답변에서 시는 '문제 제기 이후부터 기록물의 기증 여부와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증 여부도 파악 중이란 말이었다.

김해시가 지난 5월 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때도 기증받은 것 자체를 명확하게 하지 않았다.

시가 내방가사 원본을 '기증품'이라고 명확히 하고 기증자 등을 대외에 처음 밝힌 것은 연합뉴스 정보공개 청구에 대한 답변에서였다.

수사를 의뢰할 당시 항간엔 누군가 자료 가치를 아는 시청 인사가 가져갔을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다.

어쨌든 수사의뢰에 대해 경찰은 "기증 자체가 확실하지 않은 등 수사 의뢰 내용이 부실하고 범죄 혐의점이 없다"며 "분실이 아닌 도난 관련 범죄혐의가 있더라도 공소시효가 지나 수사에 착수할 근거가 빈약하다"고 적극적 의지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기증한 후손 측에서 기증 사실을 명확히 해 수사의뢰 등 민원을 제기하면 사실 확인 차원의 수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란 여지는 남겼다.

시에서 기다리던 답을 듣지 못한 김융일 씨는 자체 수사의뢰는 물론 청와대 국민청원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시에서 "찾았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시가 찾은 곳은 시청 본관 지하 기록물 보존실이었고 서류봉투에 들어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융일 씨는 이전부터 얇은 책이 봉투 속에 들어있을 것이라고 귀띔을 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시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찾아보겠다'고 한 지 얼마 안 돼 1년여를 찾아 헤매던 원본이 나타났다고 밝혀온 것이다.

시의 설명을 모두 인정하고 1년여 노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14년 전 기증 단계부터 보관 과정은 너무나 허술하고 의문투성이다.
시는 감사실까지 동원해 기증 단계부터 조사를 벌였지만 2005년 당시 3·1절 기념식장에서 중요 자료를 기증받았는데 기념식 행사 순서에도, 행사 후 기록에도 만세운동 내방가사를 기증받았다는 근거가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관련 규정이 마련되지 않은 것은 두고라도 상식적으로 전혀 납득이 안 되는 대목이다.

이날 확인한 원본은 애초 기증할 당시 사용한 봉투가 아닌 엉뚱한 제목을 단 다른 봉투에 들어있었고, 아무런 분류도 없이 서가에 있었지만 1년 넘게 뒤져도 못 찾았다는 설명만 뒤따랐다.

현재 시 기록보존실 5곳엔 분류를 마치고 보존상자에 '편성'된 자료가 15만권에 이른다.

상자 하나에 황화일 4∼5개가 있고 황화일 한 개에 서류가 보통 100∼150페이지가량 있으니 100페이지씩만 잡아도 모두 6천만 페이지 분량의 방대한 규모다.

다른 지자체에 비해 1년 이상 보존 대상이면 모두 보존하고 있어 자료량이 많은 편이라고 한다.

공공기록물법이나 국가기록원 훈령 등에 따른 기록물 보존 규정이 마련된 지 얼마 되지 않다고 하더라도 시대적으로나 내용으로나 우선순위에 들어갈 희귀자료를 기증받은 후 14년여간 방치한 김해시 관련 행정의 구멍이 너무 커 보였다. 3·1 만세운동 100주년은 한 세기를 넘어 기념하고 학술행사를 하는 데만 그칠 게 아니라 당시 선조들이 목숨을 걸고 거사를 벌이고 관련 기록을 후손에게 전해주려 했던 정신을 이어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를 다시 확인한 듯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