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또 한 번의 시작' 예고한 판문점 美·北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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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北·美 정상의 판문점 만남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미국과 북한 간 ‘깜짝’ 정상회담이 열렸다.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마치고 한국에 와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남으로써 남·북·미 세 정상이 분단과 전쟁을 상징하는 장소에서 회동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제안이 만들어낸 즉흥적 만남이었는지, 아니면 치밀한 사전계획에 의해 ‘포장된’ 깜짝 만남이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北이 핵을 포기해야 의미 있어
남북 간 대화 중요하지만
힘으로 뒷받침 않으면 참극 초래
확고한 안보태세부터 갖춰야
김태우 < 前 통일연구원장 >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즉석 회견에서 미국과 북한이 곧 실무급 핵 협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합의가 사실이라면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답보상태에 머물던 핵 대화가 새로운 동력을 얻는 것이어서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북한이 이 발표에 대해 어떻게 나오는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브로맨스(bromance: 남자들 간 진한 우정)를 연신 강조하면서도 “속도보다는 좋은 포괄적 합의가 필요하다”며 ‘일괄타결·빅딜’ 입장을 재강조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과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실무협상을 맡을 것이라고 했고, “제재완화는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도 했다. 즉, 북한이 핵 대화 재개를 위한 조건으로 주문했던 ‘새로운 협상자세’ ‘새로운 협상자’ ‘새로운 셈법’ 등을 모두 거부한 것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단계적으로 합의하고 합의마다 구체적인 보상 조치가 수반되는 ‘단계적 동시행동’ 방식을 주장해왔지만 다시 한 번 거부당한 것이다.
한·미 간 간극도 재확인됐다. 미·북 회담 후 트럼프의 기자회견에 합류한 문 대통령이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향한 큰 산 하나를 넘었다” “영변 핵이 타결되면 대북제재 완화를 검토해야 한다” “영변 핵 타결은 비핵화의 입구” 등의 발언으로 북한의 ‘단계적 합의’ 방식에 힘을 실어줬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동조를 얻지 못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도착하면서부터 한·미 정상 간 “결단에 감사” “대화 동력” “역사적 진전” 등 많은 덕담이 오갔지만, 핵 문제에서는 여전히 ‘남북공조 대(對) 미국’이라는 전례 없는 구도가 온존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초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미사일 시험으로 보지 않는다. 우리가 중시하는 것은 장거리 미사일”이라며 한국 안보를 경시하고 핵 대화 재개에만 초점을 맞추는 발언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과 문 대통령의 북한 편들기를 감안하면 “한·미 동맹은 전례 없이 양호하다”는 두 정상의 말이 외교적 덕담 수준의 발언임을 실감할 수 있다.6·25전쟁의 당사국인 세 나라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난 것 자체는 ‘역사적 사건’이 맞다. 하지만 핵 문제에서는 ‘또 한 번의 시작’을 의미할 뿐 그 끝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판문점 회동이 북핵 해결과 관련해 유의미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북한이 모든 대량살상무기를 내려놓고 ‘착한 나라’로 변신하는 시작이었음이 판명될 때에만 가능하다. 북한이 핵 능력의 일부만을 내주면서 안보 보상과 경제 보상을 받아가는 ‘가짜 비핵화’로 귀결된다면 역사는 판문점 회동을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문 대통령이 캠프 보나파스에서 “대화만이 평화로 가는 수단”이라고 말한 것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대화는 평화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지만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역사에는 힘과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은 대화가 참극을 자초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누가 보더라도 현 정부 이래 한국 외교는 고립의 길을 걸었고, 국방은 이완되고 있으며, 동맹 신뢰도 약화됐다.
국제사회와의 외교 공조, 확고한 안보 태세, 튼튼한 동맹 및 강력한 연합방위 태세 등은 북한의 ‘진짜 비핵화’를 끌어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다. 이를 제쳐두고 남북한 정부 간 공조와 대화 자체에만 올인한다면 나라 장래에 대한 국민 불안은 오히려 증폭될 것이다. 그렇다면 장병들에게는 “우리가 대화를 노력하는 중에도 여러분은 부릅뜬 눈으로 북녘을 주시해야 한다”고 당부했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