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행운도 공부해야"…'B급 청약' 전략으로 전세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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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집마련 성공기(25)서울 강북에 사는 이동진 씨(39·가명)는 요즘 주말마다 신정동에 들르는 게 낙이다. 청약에서 당첨된 아파트가 준공을 앞두고 있어서다. 지긋지긋한 전세살이를 끝낼 날이 반년 여 앞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에 그는 매일 입이 귀에 걸린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 씨가 전세를 전전하기 시작한 건 6년 전 결혼하면서부터다. 부모에게 융통한 돈까지 합쳐 수중엔 1억4000만원정도 있었다. 단출한 신접살림만 들일 작은 집도 1억~2억원은 더 있어야 살 수 있었다. 대출을 끼고 집을 살까도 생각해봤지만 연일 집값이 내린다는 뉴스만 들려 불안했다. 그는 결국 매수를 포기하고 전세를 선택했다. 신혼부터 자가로 사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전셋집 구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전세대출 5500만원을 보태서야 정릉동에서 1억9500만원짜리 15년차 소형 아파트 신혼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부동산 경기가 식어 전세 수요가 늘면서 가격도 높아졌다는 게 일선 중개업소들의 설명이었다. 첫 집이지만 이 씨 마음엔 썩 들지 않았다. 여의도에 있는 직장도 멀었고 교통이 편한 것도 아니었다. 언덕배기 신혼집을 두고 그의 아내도 저녁마다 불만을 쏟아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앞으로 열심히 돈을 모으는 수밖엔.
그새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부의 삶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하지만 이 씨는 외벌이를 하면서도 1년3개월 만에 전세대출을 모두 갚았다. 커피 한 잔 덜 마시고 택시 한 번 덜 탄 결과다. 그러면서도 2000만원의 목돈을 모았다. 대출상환액까지 합치면 7000만원 이상 저축한 셈이다. 자산을 2억1000만원으로 불린 이 씨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그런데 부동산시장이 심상치 않았다. 돈 모으는 속도보다 집값 오르는 속도가 빨랐다. 이 씨가 입주할 때 3억원 안팎이던 주변 소형 아파트가격은 4억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이 와중에 집주인에게선 직접 이사를 오겠다는 연락이 와 방을 비워줘야 할 처지가 됐다.결국 이 씨는 만기와 동시에 새 전셋집을 구해 둥지를 옮겨야 했다. 자산을 불렸지만 정릉동을 벗어나진 못했다. 3억3000만원짜리 아파트를 구하면서 다시 전세대출 1억2000여 만원을 받았다. 이삿짐을 싸던 날 그는 2년 전 집을 사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담보대출을 겁내지 말 걸”
돌이켜보니 아내와 맞벌이를 하던 결혼 직후가 현금흐름이 가장 좋았던 시기였다. 아이를 낳고 아내가 휴직을 하자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나마 준공된 지 7년을 넘기지 않은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한 게 위안이었다.
이 씨는 그맘때쯤 친하게 지내던 친구의 연락을 받았다. 일찌감치 부동산 투자에 맛을 들인 친구였다. 그는 세를 안고 집을 사는 ‘갭투자’로 아파트를 14채까지 불렸다. 강남입성에도 성공했다. 가끔 기별할 때마다 자랑만 늘어놓던 친구이기도 했다. “이번에 망해서 돈이나 좀 빌려달라고 전화했으리라”이 씨는 친구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집요했고 결국 두 사람은 만났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며, 아직도 강북 전셋집에 사느냐고 묻던 친구는 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오히려 “청약이나 해보라”면서 술값까지 척 내고 떠났다. 새로 뽑았다는 1억원짜리 외제차를 타고서.
이 씨가 허세 정도로 넘겨 들었던 친구의 말을 다시 떠올린 건 두 번째 전세 만기가 돌아올 때쯤이었다. 전셋값은 야속하게 올랐고 청약통장엔 먼지가 쌓이고 있었다. “정말로 당첨되면 어쩌지”란 생각에 아껴두던 통장이었다. 찔러나 보자는 아내의 말에 난생 처음으로 아파트에 청약했다. 보기 좋게 탈락했다. 오기가 생긴 그는 2~3개월 동안 서울에서 청약하는 모든 아파트에 통장을 찔러넣었다. 모델하우스엔 들르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같았다.
“여보, 우리도 전략이 필요한 것 같아.” 아내의 한 마디에 이 씨는 나름의 연구를 시작했다. 그동안 낙첨한 단지들의 청약경쟁률을 모두 분석했다. 주택형별로 경쟁률 편차가 심했다. 비교적 선호도가 낮은 설계이거나 동·향일 때 경쟁률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얼마 뒤 신정뉴타운에서 한 재개발 아파트가 분양을 시작했다. 전용면적 84㎡ 주택형이 14개나 되는 단지였다. 이 씨는 자신의 분석대로 이른바 ‘B급 플랜’을 가동했다. 우선 평면도를 보고 선호도가 높은 주택형들부터 대상에서 제외했다. 통상 방 세 칸과 거실을 일자로 배치한 판상형이 인기가 높았다. 입주자모집공고문을 꼼꼼히 읽어 특정 동엔 항공기 소음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그 대신 해당 동엔 유치원 등 편의시설이 들어오기로 돼 있었다. 이 씨는 망설임 없이 이 주택형에 청약했다.
아파트의 1순위 청약경쟁률은 6.3 대 1. 그가 청약한 주택형은 2.8 대 1로 단지 전체 평균보다 낮았다. 이 가운데 이 씨가 1이었다. 조정대상지역의 중소형 주택형에 가점제가 전면 적용되기 전이어서 누릴 수 있는 행운이기도 했다. ‘신정뉴타운 아이파크위브’는 그렇게 이 씨의 품으로 들어왔다. 분양가는 5억6000만원 안팎으로 그의 전세 보증금보다 한참 많았다. 덜컥 당첨이 되고 나니 어떻게 잔금을 마련할까 겁도 났다. 하지만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계약금 10%(5600만원)만 내면 일단 내 집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 씨는 그간 모은 돈에다 신용대출을 보태 얼른 계약금부터 냈다. 당시만 해도 ‘8·2 대책’이 발표되기 전이어서 중도금 대출이 분양가의 60%까지 가능했다. 입주 때 잔금 1억6000만원 안팎만 전세금을 빼 치르면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이 씨는 계약을 하면서 모델하우스에 처음 들렀다. 왜 새 아파트에 대한 선호도가 날로 높아지는지 그때서야 알게 됐다. 우선 방마다 문지방이 없다는 데 놀랐다. 가변형 벽체를 터 거실을 더욱 넓게 쓰거나 방 두 칸을 이어 붙일 수도 있었다. 집이 좋으니 낙후하다고만 여겼던 주변 환경도 달라 보였다. 흔한 동산은 공원처럼, 낡은 단독주택과 빌라들은 재개발이 끝나면 아파트가 들어설 곳으로 보였다. 목동과 가까워 자녀 교육 환경이 좋다는 판단도 들었다.올해 초까진 유혹도 많았다. 지난해까지 집값이 줄곧 오르면서 분양권에 웃돈도 많이 붙었기 때문이다. 중개업소들에 전화를 돌려보니 7억원 중후반은 받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전매를 하지 않는 게 유리했다. 강북 주요 지역 소형 아파트 가격도 10억원을 넘어가고 있었다. 새 아파트 중형 면적대를 5억원대에 손에 쥘 수 있는 건 자신이 마지막이었으리라고 이 씨는 마음을 굳게 다졌다. 입주 후 계획도 세웠다. 아파트를 레버리지로 활용해 부동산투자를 시작하는 것이다. 월급만으론 가족을 부양하고 노후계획까지 마련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해서다. “유주택이란 것 자체가 은행에선 신용이야.” 이 씨는 집 한 채를 갖는 순간 투자 범위가 넓어진다던 친구의 말을 되뇌였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