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표정한 무용수들의 몸짓…배우들 화려한 의상과 대비

브레히트 오페라 '마하고니…' 연습현장 가보니

히틀러가 가장 싫어한 오페라
인간의 끝없는 욕망·파멸 다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스튜디오에서 배우들이 동작을 연습하고 있다. 국립오페라단 제공
“사람들 하는 걸 보니 금은 이들에게서 나와. 강물보다 사람에게서 금을 뽑기가 더 쉽단 얘기지. 그러니까 여기 도시를 세우고 ‘마하고니’라 부르기로 하자. ‘그물의 도시’라는 뜻이야.”

독일어 가사로 된 노래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연습동 오페라스튜디오를 울렸다. 무표정하게 절도 있는 몸짓을 보여주는 무용단의 춤과 배우들의 화려하고 과장된 의상이 묘한 대비를 이뤘다. 국립오페라단이 오는 11~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국내 초연하는 오페라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의 연습 현장이다.이 작품은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호흡을 맞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작곡가 쿠르트 바일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1930년 독일 라이프치히 오페라극장에서 초연했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으로 한 사회가 번영하고 몰락하는 과정을 신랄하게 그린다. 히틀러가 가장 싫어했던 오페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나치의 상연 금지령이 내려 한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하기도 했지만 20세기 현대 오페라의 걸작으로 꼽히며 해외에서 자주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극은 경찰에 쫓기던 남녀 사기꾼 세 명이 타고 가던 마차가 고장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그들은 그곳에 눌러앉아 새 도시 ‘마하고니’를 세운다. 이곳의 규칙은 간단하다. 배가 터지도록 먹고 성적 본능에 충실히 따르는 것이다. 링에 오르면 상대가 죽을 때까지 주먹을 휘두르고 한정 없이 술을 마신다. ‘그물의 도시’라는 거미줄에 걸려 든 사람들은 재산을 탕진한다. 절대적인 가치를 지닌 것은 오직 돈뿐이다.

원작의 배경은 19세기 중반이지만 이번 공연은 시점을 17~18세기로 앞당겼다. 총연출과 안무를 맡은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은 “유럽 열강이 식민지 개척에 열을 올리던 시대”라며 “미니멀한 무대와 과장되고 화려한 바로크 스타일의 의상을 극단적으로 대비해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주역 가수들과 합창단의 의상이나 연기와 달리 무대와 조명은 현대적으로 꾸민다.지휘를 맡은 다비드 레일랑은 “전형적인 오페라의 진지한 곡도 있지만 가요처럼 가벼운 느낌의 곡도 있다”며 “재즈 영향도 많이 받아 오페라보다는 노래극에 가깝다”고 소개했다. 그는 “음악적으로도 브레히트 특유의 ‘낯설게 하기’가 부각된다”며 “오페라 무대에서 보기 드문 색소폰, 밴조, 반도네온 등의 악기로 새로운 색깔을 입혔고 이를 통해 관객들은 묘한 긴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낯설게 하는 효과를 살리기 위해 곡 사이에도 내레이션을 넣어 극의 흐름을 끊어간다. 드라마투르기를 맡은 이용숙 음악평론가는 “춤과 텍스트, 음악이 잘 어우러지는 가운데 몰입을 끊는 장치들이 들어가 전체적으로 부조리극 같은 느낌을 살린다”고 설명했다.

마하고니를 세우는 베그빅, 패티, 모세는 각각 메조 소프라노 백재은, 테너 구태환, 베이스 박기현이 맡는다. 테너 미하엘 쾨니히와 국윤종은 이 도시를 찾아오는 벌목공 지미 역, 소프라노 바네사 고이코엑사와 장유리는 지미와 사랑에 빠지는 제니 역을 번갈아 맡는다. 국립현대무용단 무용수들과 그란데오페라합창단이 함께하고 반주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한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