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절벽 '찔끔 감세'로 풀겠다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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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반기 경제정책 방향 확정정부가 올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전망치를 기존보다 0.2%포인트 낮은 2.4~2.5%로 재설정했다. 미·중 무역분쟁 여파로 수출이 급감하고 있는 데다 설비투자와 소비까지 얼어붙는 등 성장의 3대 엔진이 급랭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경제활력을 살리기 위해 소비촉진책과 함께 기업 투자 ‘감세 카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각종 규제와 강성 노조 등 ‘기업하기 힘든 환경’은 그대로 둔 채 6개월~1년짜리 한시 혜택만 내놨다는 점에서 얼어붙은 투자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란 평가가 나온다.
기업하기 힘든 환경 놔둔 채
자동화 설비 공제율 확대 등
6개월~1년 한시 대책만 내놔
정부는 3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어 하반기 경제정책 방향을 확정했다. 정부는 작년 2분기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설비투자를 늘리기 위해 ‘투자촉진 세제 인센티브 3종 세트’를 마련했다. 기업이 자동화 설비 등을 들여놓을 때 세금을 깎아주는 ‘생산성 향상 시설 투자세액공제율’을 현행 1%, 3%, 7%(대·중견·중소기업)에서 2%, 5%, 10%로 1년 동안 확대하기로 했다. 기업에 돌아가는 혜택은 5300억원 안팎이다. 투자 설비에 대한 감가상각 속도를 높여주는 가속상각 적용 대상과 한도를 연말까지 한시적으로 늘려 기업에 법인세 납부 연기 혜택을 주기로 했다.
정부는 또 서울 잠실운동장 또는 경기 고양시 일산에 ‘제2 코엑스’를 짓는 등 10조원+α 규모의 민간 투자 프로젝트들을 조기에 착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소비를 늘리기 위해 15년 넘게 탄 노후 자동차를 신차(경유차 제외)로 바꾸면 개별소비세를 70%(최대 100만원) 깎아주는 대책도 내놨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정부가 대기업 증세에서 감세로 돌아선 건 의미가 있지만 규모가 작아 대규모 투자를 유인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투자 불씨를 살리려면 규제 완화와 노사관계 재정립 등 기업 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反기업 규제 놔둔 채 임시방편 감세…"투자 불씨 살리기엔 역부족"정부가 대기업을 타깃으로 대규모 증세에 나선 건 작년부터였다. 법인세율을 최고 25%로 올렸고 대기업이 투자할 때 주던 세제혜택은 줄였다. 당시 3, 5, 7%(대·중견·중소기업)였던 생산성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율과 안전설비 투자세액공제율은 1, 3, 7%로 떨어졌다. 환경보전시설 투자세액공제율은 3, 5, 10%에서 1, 3, 10%로 조정됐다. “국내에 투자할 이유가 또 하나 없어졌다”는 기업들의 하소연은 이내 현실이 됐다. 작년 2분기(전기 대비 -7.6%)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설비투자 감소 추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3일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으면서 정책의 초점을 ‘투자 활성화’에 맞추고, 축소한 투자 세제혜택을 다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반기업정서에 기댄 친(親)노동정책과 강성 노조, 높은 인건비, 각종 규제 등 기업이 국내 투자를 꺼리는 근본 원인은 놔둔 채 세금만 ‘찔끔’ 깎아주는 임시방편을 내놨다는 점에서 투자유인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투자 불씨 살리자”하반기 경제정책의 핵심은 ‘투자촉진 세제 인센티브 3종 세트’다. 기업들이 설비 투자를 늘려야 양질의 일자리로 꼽히는 제조업 고용이 늘고, 소비도 활성화되는 점을 감안해 나온 조치다.
정부는 우선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1년 동안 기업이 자동화 설비 등을 들여놓을 때 세금을 깎아주는 ‘생산성 향상 시설 투자세액공제율’을 현행 1, 3, 7%(대·중견·중소기업)에서 2, 5, 10%로 확대키로 했다. 기업에 돌아가는 세금 절감 혜택은 5300억원 안팎이다.
또 올해 말 종료 예정이었던 생산성 향상시설 투자세액공제와 안전시설 투자세액공제 일몰기한을 2021년 말로 2년 연장하고, 적용 대상에 각각 물류산업 첨단시설·의약품제조 첨단시설과 송유관·LPG시설 등을 추가했다.투자 설비에 대한 감가상각 속도를 높여주는 가속상각도 확대키로 했다. 예컨대 내용연수 10년인 1000억원짜리 투자설비는 원래 매년 100억원씩 감가상각해 비용처리해야 하지만, 50% 가속상각제도를 활용하면 첫 5년 동안 매년 200억원씩 감가상각해 비용처리할 수 있다. 초기에 비용을 많이 쓴 걸로 장부에 기재되는 만큼 이익이 줄어들어 법인세를 적게 낸다. 정부는 대기업에 대해선 가속상각 허용한도(50%)는 그대로 두되 올 연말까지 적용대상을 생산성향상시설, 에너지절약시설로 늘려줬다. 중소·중견기업에는 연말까지 모든 사업용 자산에 대한 가속상각 허용한도를 75%로 높였다. 정부는 가속상각에 따른 과세이연효과로 투자 초기 연도인 2020년과 2021년 각각 1000억원과 3900억원의 세수 감소효과가 나타나는 등 법인세 납부 연기 혜택이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는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등 신사업 분야 대출·보증을 5조원에서 10조원으로 확대하고 수출기업에 대한 정책금융 지원금액을 427조원에서 434조5000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땜질식’ 처방으로 투자 살아날까
전문가들은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에 대해 “인센티브 규모가 작고 한시적이어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정도 대책으로는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는 설비투자 감소추세를 막기 어렵다는 얘기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세제혜택을 줄인 생산성향상시설, 안전설비, 환경보전시설 등 ‘설비투자 3종세트’ 가운데 생산성향상시설에 대해서만 이번에 공제율을 높여주기로 했다. 그나마 국내 설비투자의 80%를 담당하는 대기업에 대한 공제율은 2년 전(3%)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소폭 올렸고, 혜택도 1년뿐이다. 홍성일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정책팀장은 “투자 확대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인센티브를 주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에 차등을 둔 건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줄이는 근본 원인은 내버려둔 채 ‘땜질식’ 처방만 내놨다는 점에서 투자 축소 흐름을 끊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국내 기업을 유치하려는 해외 국가보다 크게 높은 인건비와 법인세, 툭하면 파업에 나서는 강성 노조,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 등 자고 일어나면 생기는 각종 규제를 없애야 해외로 떠나려는 기업들을 붙잡을 수 있다는 얘기다.한 대기업 최고경영자(CEO)는 “기업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는 건 한국보다 전반적인 경영 여건이 좋기 때문”이라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는 한 세금 몇 푼 깎아준다고 한국 투자를 늘리는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