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범 금통위원 "과도한 신용공급은 경제성장에 부정적"(종합)

"과거 금융위기, 신용확대로 촉발"…기자간담회서 금융안정 강조
최근 경기악화엔 우려 표시…경기여건 따른 신축적 대응 여지 남겨
고승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3일 과도한 신용공급이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통화정책 수립에 있어 금융안정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고 위원은 이날 서울 중구 한은 본관에서 출입기자단 간담회를 열고 "금융발전으로 여겨졌던 과도한 신용공급은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일 수 있고 금융안정도 해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며 이처럼 말했다.

고 위원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한은 금통위 내에서 중도파 성향으로 분류되는 인사다.

그는 지난 2017년 11월 가계부채 증가에 따른 금융 불균형 누적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고 금리를 인상하자는 다수 의견에 동참했다. 지난해 10월 금통위에서 그가 이일형 위원과 함께 '금리 인상' 소수 의견을 낸 뒤 금통위가 다음 달 금리를 올리기도 했다.

금융시장이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한 고 위원의 견해에 주목하는 이유다.

고 위원은 이날 간담회에서 다수의 연구결과를 인용해 과도한 신용공급이 경제에 미칠 수 있는 위험을 경고했다. 신용증가가 일정 수준까지는 경제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임계 수준을 넘어서면 결국 성장에 해가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고 위원은 "2000년대 초 미국 닷컴버블 붕괴로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저금리 기조를 유지했다"며 "저금리 정책은 신용팽창으로 이어졌고 결국 2000년대 중반 주택시장과 주식시장의 붐이 조성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과다한 신용공급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 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고 위원은 또 "과거 역사를 돌이켜 보더라도 그동안 세계가 겪은 많은 금융위기가 신용확대 때문에 촉발됐음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금융안정이 바탕이 돼야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많은 연구가 강조하고 있다"며 "이런 과정에 통화정책이 미치는 영향도 상당히 클 것이므로 통화정책 수립 시에도 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통화정책에서 금융안정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그의 이런 발언은 '매파'(통화긴축 선호) 성향의 언급으로 풀이된다.

고 위원은 다만 금융안정 외에 경기나 물가상승률도 간과해선 안 된다며 경제 여건 변화에 따른 신축적 통화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그는 "통화정책은 어느 한쪽만을 고려해 결정할 수 없으며 실물경제 상황과 금융안정 상황에 대해 종합적이고 균형적으로 고려한 뒤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 위원은 모두발언 뒤 이어진 질의응답에서도 "수출이 안 좋은 데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회복이 느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물가안정목표에 비해 물가가 낮은 것도 걱정"이라고 현재 경기상황을 진단했다.

이어 "성장률이 낮아 수요 측면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낮다면 이를 통화정책에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적절한 정책을 적절한 타이밍에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금융안정을 충분히 고려하되 경기가 악화할 땐 금리인하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이달 18일 예정된 금리결정 금통위에서 조동철 위원과 신인석 위원이 금리인하 의견을 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시장은 고 위원의 입장에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고 위원이 사실상 금리결정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윤여삼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이날 고 위원 발언에 대해 "경기상황이 안 좋지만 하반기에 경기가 개선되는지, 수출은 어떻게 될지 지켜보자는 것으로 풀이된다"며 "금리 향방과 관련해 중립적인 발언으로 생각되고, 이달 금통위에서 당장 인하 의견을 내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