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나미 다케시 日 산토리 CEO, 115년 넘은 가족경영 회사에 영입…히트작 '하이볼'로 매출 2배 껑충

'글로벌 톱3' 위스키 회사 자리매김

편의점 CEO서 주류 CEO로 변신
Z세대의 입맛 잡아라
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2014년 6월 니나미 다케시 일본 산토리홀딩스 최고경영자(CEO)의 임명은 그 자체로 큰 화제였다. 일본을 대표하는 주류회사 산토리는 1899년 설립 이후 115년간 가족 경영을 고수한 회사였기 때문이다. 산토리가 가족 경영의 전통을 깨고 처음으로 외부에서 영입한 인사가 니나미 CEO였다.

니나미 CEO가 임명된 후 5년이 흘렀고, 이 기간 매출이 두 배로 뛰었다. 일본 열도는 산토리 위스키로 만든 ‘하이볼’ 열풍에 빠졌다. 하이볼은 위스키에 탄산수를 넣어 희석한 음료를 통칭한다. 골프장 클럽하우스에서 이 술을 마시고 공을 치면 공이 하늘로 올라간다고 해서 하이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독한 술이 아니다 보니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다. 니나미 CEO가 젊은 층을 공략하는 다양한 위스키 라인을 내놓으면서 하이볼 열풍에 불을 붙였다는 평이다.

○편의점 CEO서 주류 CEO로 변신

산토리는 창업주 도리이 신지로 회장이 1899년 설립한 도리이상점이 모태다. 태양(sun)과 창업자 도리이 회장의 성을 따 ‘산토리(선+토리)’라는 이름이 됐다. 도리이 회장은 근대화가 급속히 이뤄지던 때 해외에서 위스키 제조 공정을 배워 1923년 오사카 야마자키에 일본 최초의 위스키 양조장을 세웠다.

산토리는 1929년 일본 최초 위스키 ‘시로후다’를 내놨고 이후 산토리 올드, 산토리 로열, 야마자키 등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했다. 동양인 취향에 맞는 부드러운 맛의 위스키가 인기를 끌면서 산토리는 일본 경제의 고속 성장과 함께 외형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위스키 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산토리 역시 위기를 맞았다.

산토리는 대형 인수합병(M&A)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2014년 1월 160억달러에 미국 대표 위스키 회사인 빔을 인수한 것이다. M&A에 따른 재정 부담으로 산토리의 순부채는 150억달러로 불어났다.○첫 과제는 미국 빔과의 통합

이때 구원투수로 나선 게 니나미 CEO다. 그는 미쓰비시 출신의 전문 경영인으로, 이전까지는 주류업과 큰 인연이 없었다. 1959년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에서 태어난 그는 1981년 게이오대를 졸업하고 일본 최대 무역회사인 미쓰비시에 들어갔다. 1991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MBA)를 받은 후 1995년 미쓰비시와 합작한 병원식품서비스 업체 소덱스를 설립했다. 2002년 미쓰비시의 자회사 편의점 로손으로 옮겨 2005년 CEO 자리에 올랐다. 2014년 로손 회장에 취임했다.

산토리 창업 3세인 사지 노부타다 산토리 회장이 로손의 니나미 CEO를 눈여겨본 것으로 알려졌다. 니나미 CEO는 12년간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편의점 체인인 로손을 경영하면서 전문 경영인로 명성을 쌓고 있었다. 특히 하버드 MBA 출신으로 해외 고급 네트워크를 가진 것으로 유명했다. 사지 회장은 글로벌 M&A 경쟁에 적절한 인사로 그를 점찍었다.

산토리로 자리를 옮긴 니나미 CEO의 첫 과제는 빔과의 통합이었다. 미국과 일본의 문화 차이로 인해 두 회사는 쉽게 융화되지 못했다. 위스키의 본고장, 미국을 대표하는 위스키 제조사라는 자부심이 컸던 빔의 임직원들을 아우르기 어려웠다. 빔의 핵심 간부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니나미 CEO는 2015년 빔의 본사를 미국 일리노이주 교외에서 시카고 시내로 이전하도록 밀어붙였다. 본사를 술집과 식당이 밀집한 시카고 시내로 이전하면 소비자 동향을 더 잘 파악할 수 있다고 여겨서다. 일부 직원은 본사 이전에 많은 비용이 든다며 반대했지만 강행했다. 니나미 CEO는 “내가 빔의 주도권을 완전히 쥐기 위한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글로벌 톱 위스키 제조회사”

지난 3월 출시한 버번위스키 ‘리젠트’는 니나미 CEO의 결실로 평가된다. 리젠트는 산토리와의 통합에 성공한 빔산토리의 신제품이다. 산토리는 빔과 합병한 뒤 5년 만에 매출이 두 배나 뛰었다. 같은 기간 순부채도 150억달러에서 100억달러로 크게 줄었다.

산토리는 영국 디아지오와 프랑스 페르노 리카드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위스키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고령화와 경기 침체가 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일본 내수 시장을 뛰어넘어 산토리의 영향력이 훨씬 커졌다”고 평가했다.

산토리는 2030년까지 신흥 시장에서 30억달러 판매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연간 매출의 70% 이상을 일본과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다. 신흥 시장에선 디아지오, 페르노 리카드 등 강력한 경쟁자들이 버티고 있는 만큼 쉬운 길은 아니지만 도전하기로 했다. 일본 지역의 인건비 및 물류 비용 증가 등도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니나미 CEO는 ‘Z세대’에 주목하고 있다. Z세대는 미국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 초반에 출생한 젊은 세대를 의미한다. 그는 “이제 막 술을 마시기 시작한 Z세대 구성원들 사이에서 위스키 소비 감소가 가장 두드러진다”며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제품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