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광장 관리 책임 미루는 경찰과 서울시

배태웅 지식사회부 기자 btu104@hankyung.com
“서울 광화문광장은 ‘시설물’이니 경찰이 보호해달라는데, 솔직히 광화문광장이 시설물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서울시가 관리하는 게 원칙이죠.”

최근 종로경찰서 소속 경찰관에게 광화문광장에 대한 경찰의 후속 조치를 묻자 나온 대답이다. 서울시는 지난달 27일 경찰에 광화문광장의 시설물 보호 요청을 했다. 당시 광화문광장을 점거하고 있던 우리공화당의 천막을 철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경찰은 서울시 요청에 묵묵부답이었다. 원칙적으로 광화문광장은 서울시가 관리하는 지역이라는 이유에서였다.당시 경찰 관계자는 “기존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는 지원을 할 것”이라고 했다. 반면 서울시는 공식적으로 시설물 보호 요청을 한 만큼 관할 경찰서가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설물 보호 요청이 들어오면 경찰은 군사시설, 학교, 주거지역에 한해 집회·시위를 제한할 수 있다. 다만 광화문광장은 이런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경찰 측 설명이다.

결국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을 맞아 공화당이 잠시 천막을 청계광장으로 옮긴 사이 나무화분 80개를 광장에 기습 설치해 공화당의 진입을 막았다. 고육지책인 셈이다. 하지만 공화당은 광화문광장에 다시 천막을 설치하겠다고 공언했다. 경찰은 여전히 서울시의 요청에 답변하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모호한 관리 규정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일반적인 집회·시위는 경찰이 불법집회 여부를 판단한다. 반면 광화문광장은 서울시 조례에 따라 서울시가 사용 허가 등을 관리하고 있다. 광화문광장에서의 불법집회를 놓고 경찰은 서울시 조례를, 서울시는 집시법을 각각 들이밀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가 내놓은 대책인 화분 설치도 결국 일부 공간을 묶어둠으로써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할 수 있다. 화분 설치에 따른 세금은 덤이다. 서울시가 설치한 화분은 대충 계산해도 8000만원이 넘는다. 경찰과 서울시가 서로 공을 떠넘기면 불편과 비용은 시민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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