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은행 한국 대출 69兆…만기연장 거부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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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평 LG경제硏 자문위원“일본계 은행의 한국 기업 및 은행에 대한 여신 규모가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586억달러(약 69조원)에 달합니다. 일본 은행들이 은밀하게 대출금 일부를 회수하거나 만기 연장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은밀한 금융보복 카드 쓸 수도"
국내 대표적인 ‘일본통’으로 꼽히는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사진)은 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이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경제보복에 나선 만큼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금융·기술 분야까지 다방면에 걸쳐 보복 조치를 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자국 은행과 투자회사 등을 동원해 한국에 대한 금융 보복을 은밀하게 진행할 수 있다”며 “한국 기업이 상대적으로 저금리인 일본 자본시장에서 사무라이본드(외국 기업이 일본에서 발행하는 엔화표시 채권)를 발행할 여건도 나빠질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일본계 은행이 한국에 핵심 소재를 수출하는 일본 기업에 대한 무역금융 지원을 줄일 수 있다고도 관측했다. 이 위원은 “무역금융을 죄면서 간접적으로 반도체 외에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도 까다롭게 규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경우 일본 기업의 한국 인재 채용을 줄이도록 하거나 한국 기업인이 일본에서 설계도나 기술지도를 들고 가는 것을 막는 시나리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한국 경제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반도체를 우선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전개 방향에 따라 여러 조치 수단을 사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日, 핵심소재 수출 조였다 풀었다 반복해 韓기업 괴롭힐 것"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일본 도쿄에서 나고 자랐다. 재일동포 1세 아버지와 2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로 일본 호세이대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양국의 통상·산업 관계를 연구해온 그는 두 나라의 충돌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이 위원은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관심을 두는 한국인은 많지 않지만 일본인은 거의 대부분 이 사안을 알고 있다”며 “일본인 사이에서 한국 정부는 신뢰할 수 없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집권 자민당 총재인 아베 신조 총리가 지지층을 결집하는 차원에서 당분간 보복 수위를 낮추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 정부 역시 일본에 양보할 가능성이 낮은 만큼 단기적으로 해결될 가능성은 낮다”고 진단했다.
일본의 대(對)한국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 규제는 한국 제조업을 견제하기 위한 포석도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이 위원은 “일본의 무역보복은 한국으로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목적도 있다”며 “최근 확산되는 보호무역주의 흐름에 편승해 일본 기업을 보호하는 동시에 주력 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제보복 수위가 강화되면 한국의 주력 기업들이 받을 타격은 예상 밖으로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일본 반도체 기업인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의 내비게이션 반도체와 일본 미쓰이금속의 초박형 동박 수출이 끊기면 국내 자동차·스마트폰 공장 가동이 당장 멈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 정부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소재 수출을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해 한국 기업들을 괴롭히는 것이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라며 “한국 반도체의 생산 차질로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피해를 입는 순간부터 미국이 양국 관계에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그는 “미국이 양국에 협상을 압박하고 일본의 수출보복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확산되면 일본도 협상에 임할 것”이라며 “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양국이 경제보복을 주고받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산 핵심소재를 모두 국산화하기 어렵고 효율도 떨어진다”며 “여러 산업의 기반이 되는 첨단화학소재와 고급기계 분야에 집중해 국내 생산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구은서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