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농부 17년 뚝심…'오메가 소고기'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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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호 그린그래스 대표지난달 10일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서 열린 ‘뉴트리션(영양학) 2019 학술대회’. 세계 내로라하는 영양학자들이 모인 이 행사장에 한국의 한 축산 농부가 참석했다. 불포화지방산인 오메가3와 오메가6의 비율을 1 대 4로 맞춘 이른바 ‘오메가3 소고기’의 효능을 밝히는 논문을 발표하기 위해서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오메가 지방산 비율에 맞춰 축산물이 개발된 건 세계적으로 처음인 것으로 알려졌다. 논문 발표가 끝나자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충북 충주 축산농가에서 17년간 오메가 연구에 매달려온 신승호 그린그래스 대표(58)의 집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오메가3·6 '황금 비율' 맞춰
세계 첫 '오메가 사료' 개발
오메가3에는 인간 두뇌작용을 활성화하는 불포화지방산 DHA, 콜레스테롤을 줄여주는 EPA 등이 포함돼 있어 혈관 순환을 돕는 효과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반면 오메가6는 적혈구 생산에 도움을 주지만 섭취량이 많을 땐 혈관 건강을 해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메가3와 오메가6의 최적 비율은 1 대 4로, 이 비율이 무너지면 면역이 약해지고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의 질환에 쉽게 걸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신 대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오메가3와 오메가6 비율은 보통 1 대 44 이상”이라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옥수수 사료를 가장 많이 먹이는데 이 영향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육류가 사람 건강을 해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로 오메가 지방산 비율의 불균형도 크게 자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신 대표가 개발한 축산물은 오히려 사람 몸에 이로운 ‘메디 푸드’로 불린다.
17년간 연구를 계속할 수 있던 동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신 대표는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시작도 안 했을 것”이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는 “오메가3를 먹이면 ‘오메가 소’가 되겠거니 하는 단순한 생각에 시작했다”며 “그런데 성과가 잘 나오지 않았고 오기로 버텼다”고 말했다. 조금만 더 해보면 뭔가 나올 것만 같은 아슬아슬함 속에서 17년을 매달렸다.
그는 값싼 오메가 원료를 찾기 위해 2012년 캄보디아, 2015년 필리핀에 공장을 지었다. 하지만 실험에 연이어 실패하면서 공장을 헐값에 팔아야 했다. 신용불량자가 돼 집부터 아이들 책상까지 모두 경매 대상에 올랐다. 법원에서 날아온 소장이 집안 곳곳에 쌓여갔고 아이들 학교 급식비도 주지 못했다. 신 대표는 “아버지가 아니라 ‘웬수’”라는 원망을 들어야 했다. 2016년 10월에는 실험 도중 오른손 중지와 약지 네 마디가 잘리는 큰 사고도 겪었다.
신 대표는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2017년 32가지 곡물과 과일 등을 배합한 새 사료를 개발했다. 수수겨, 보리겨, 메밀겨, 율무겨, 잣 등 오메가3가 풍부한 잡곡부터 분유, 파인애플, 바나나 라테 파우더 등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도 포함했다. 비용은 기존 사료보다 10~15% 정도 더 들었다.
그는 이 오메가 사료를 먹인 돼지의 내장에서 ‘갈색 지방’의 활성화 가능성까지 찾아냈다. 갈색 지방은 과잉 섭취 지방을 저장하는 백색 지방으로부터 원료를 공급받아 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좋은 지방이다. 철 함유량이 높은 미토콘드리아가 많아 갈색으로 보인다고 그는 설명했다. 쥐에 오메가 사료를 먹여 실험한 결과 일반 쥐와 달리 갈색 지방이 생성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신 대표는 자신이 개발한 오메가 사료를 먹인 소고기와 돼지고기, 우유, 치즈 등의 축산물을 ‘선서오메가’라는 브랜드로 생산하고 있다. 그의 사료는 국내 70여 개 농가에서 쓰고 있다. 축산물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미국 네브래스카주에 수출도 한다. 사료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한국 축산업계에선 이례적인 성과다. 국내 사료 유통업체들의 구매 계약 요청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사료와 축산물 등으로 74억원의 매출을 올린 그린그래스는 오는 8월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투자유치설명회를 열 계획이다. 신 대표는 “한국 축산업의 실력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충주=FARM 김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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