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 이끈 진선미…한·미 통화스와프 주역 오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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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법조인열전 (24)
'사시 합격 500명 시대'연 사법연수원 28기

사법시험 합격자 수는 1981년부터 14년간 한 회 300명 안팎이었으나 1996년 38회(사법연수원 28기) 이후 500명을 넘어섰다. 변호사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해 국민 불편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커지자 사법개혁 차원에서 200명을 늘렸다. “사시 300등 이하는 YS(김영삼 당시 대통령) 덕분에 붙었다”는 말이 회자된 이유다.

합격 정원이 늘어나면서 동기 간 경쟁도 치열했다. 연수원 체육대회 때 1반 연수생(50명)은 모두 판사와 검사로 임관하겠다는 뜻을 담아 ‘전원 임관’이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교수들 앞에서 펼쳐 보이기도 했다. 당시 연수원 교수로는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 이인복·전수안 전 대법관, 김이수·이진성 전 헌법재판관 등이 있었다. 이들 연수원 28기는 사내변호사라는 길을 본격적으로 개척한 기수이기도 하다.

대학 입학 시기가 대부분 1986~1988년이었던 터라 1987년 민주화 운동을 직접 경험한 경우도 많았다. 법조계에서는 28기 가운데 진보성향 인사가 많은 이유를 여기서 찾기도 한다. 인권변호사 출신인 김진·김남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부회장,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와 심재환 변호사 부부 등이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이름이다.

28기는 1997년 연수원 입소 첫해에 열린 체육대회에서 집단 식중독을 앓았다. 연수원 측이 주문한 김밥이 모두 상했기 때문이다. 연수원생들은 상한 김밥을 제공한 연수원에 치료비를 요구했고 당시 연수원장인 가재환 태평양 변호사(고등고시 15회)가 사비 수백만원을 털어 치료비를 마련했다는 후문이다.

도산·회생 분야 한 획 그은 전대규

최근 검찰은 에콰도르 등 5개 나라와 공조해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4남 정한근 씨를 도주 21년 만에 검거했다. 정 전 회장의 사망 사실도 확인했다. 이 수사는 28기인 손영배 대검찰청 국제협력단장과 예세민 서울중앙지검 외사부 부장검사가 주도하고 있다. ‘특수통’인 손 단장은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에서 근무할 때 강의를 잘해 ‘스타 강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기획통’ 예세민 부장검사는 주제네바 한국대표부 법무협력관을 맡았으며 인권 친화적 수사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자용 법무부 검찰과장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와 한동훈 서울중앙지검 3차장의 계보를 잇는 특수통이자 기획통으로 분류된다. 다음달 검찰 간부 인사 때 차장검사 진급 1순위로 꼽힌다.

법원에선 전대규 서울회생법원 부장판사가 회생·도산 분야에서 확고한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을 받는다.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출신으로 광주지법 창원지법 수원지법 등을 거쳐 7년째 파산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도산·회생 분야 베스트셀러 《채무자회생법》의 저자다.

임정엽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2014~2015년 세월호 사고와 관련해 피고인이 48명인 9건의 1심 재판장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책임자 처벌과 사고원인 규명 외에 희생자 유가족을 배려하는 재판 진행으로 주목받았다.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공보관 등 엘리트 코스를 밟은 조병구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는 여비서 성폭력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안희정 전 충남지사에게 1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송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증거인멸 의혹 사건에서 삼성전자 임원들의 구속영장을 잇따라 발부했다. 당시 영장은 동명이인인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29기)가 청구했다.

농심 라면 담합 사건 ‘역전승’ 서혜숙

정교화 한국MS 대표변호사는 판사를 거쳐 2003년부터 김앤장 국제중재팀에서 활약하다 지난해 한국MS 경영진에 합류했다. 단순히 법무만 담당하는 사내변호사가 아니라 대관, 사회공헌 등 정책 협력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남편은 투자자-국가간 소송(ISD) 사건에서 론스타 엘리엇 메이슨 등을 대리하는 KL파트너스의 김범수 대표(연수원 17기)다.

검찰 출신인 김재훈 삼성전자 전무는 법무실 담당으로 프로당구협회(PBA) 초대 총재인 김영수 전 문화체육부 장관 아들이다. 하형인 한국IBM 전무, 김민교 한국거래소 법무팀장도 사내변호사로 성공한 사례다.

법무법인 광장의 오현주 변호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달러 부족 사태를 겪던 국내 외환시장의 위기를 한·미 통화스와프로 해결한 주역이다. 당시 정부를 대리해 미국 중앙은행(Fed)과 한·미 통화스와프 실무 협상을 주도했다. 세계적 로펌 변호사 평가기관인 체임버스아시아가 자본시장 분야에서 국내 3명에게만 주는 최고등급(밴드1)을 받은 자본시장 전문가다.

서혜숙 법무법인 바른 공정거래그룹장은 1000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된 ‘라면 가격담합 소송’에서 식품회사 농심을 대리해 대법원에서 최종 역전승을 끌어냈다. 당시 패소해 충격을 받은 공정거래위원회는 ‘세기의 소송’이라 불리는 퀄컴의 1조원대 과징금 불복 소송 자문을 그에게 맡겼다.

염용표 법무법인 율촌 스포츠엔터테인먼트분쟁팀장은 최근 전속계약 관련 소송에서 그룹 워너원 출신 가수 강다니엘 측을 대리해 승소하면서 유명해졌다. 이철원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국내 최초로 한국변호사 자격증과 영국변호사 자격증을 모두 취득한 국제중재, 국제소송, 해상업무 분야 전문가다. 최승진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기업 구조조정에서, 홍탁균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기술유출, 공정거래 관련 형사 소송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광욱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개인정보 보호와 관련된 민·형사 소송 전문가다. 윤영규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노무현 정부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할 당시 대통령 직속 조직의 국장으로 일했으며 현재 지평 회계규제팀장을 맡고 있다.

전현희, 강남서 24년 만에 민주당 ‘깃발’

여당의 대표적 ‘친문재인계’ 의원인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민변 여성인권위원장과 호주제 위헌소송 변호인단으로 활동했다. 1998년 결혼했지만 평소 소신대로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혼인신고를 미루다 2016년 총선 때 했다.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치과의사로 근무하다 변호사가 된 이력을 갖고 있다. 2016년 야당의 ‘불모지’로 불리는 서울 강남에서 24년 만에 민주당 깃발을 꽂으며 이름을 떨쳤다. 손범규 전 한나라당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과 파면 이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다. 검사 출신인 정미경 한국당 최고위원은 재선 의원 출신이다.

연수원 동기끼리 결혼한 사례는 이정희 전 대표와 심 변호사 부부, 정미경 한국당 최고위원과 이종업 변호사 부부, 강형민 수원지검 부장검사와 김병문 변호사 부부 등이 있다. 이 전 대표는 연수기간에 결혼과 출산을 하면서 수료를 29기로 미뤘다. 정 최고위원과 이 변호사는 ‘다섯 살 연상연하’ 커플로 당시로선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