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남북' 사라졌다… 반년만에 지워진 경제정책

뉴스래빗 #팩트체크 : 하반기 경제정책
△ 상반기 vs 하반기 경제정책 변화

▽ 반년만에 종적 감춘 '남북'
▽ '미국'·'중국'도 2~4회 불과
▽ '샌드박스' 고유명사 단숨 1위
▽ 반년만에 지워진 '남북 어젠다'
▽ 경제정책 생명력도 '불확실성'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가운데)이 2019년 6월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왼쪽 뒷모습)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뒷모습)의 배웅을 받으며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돌아가다 뒤돌아봤다. 사진=연합뉴스
2019년 7월 3일 문재인 정부가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했습니다. 벌써 절반이 지나간 2019년, 나머지 하반기 6개월 정부가 어떻게 경제 정책을 운영할지를 구체적으로 대내외에 설명하는 공식자료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의 경제운영 중심 축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까지 한 자리에 집결했습니다.
2019년 7월 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열린 2019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 참석했다. 왼쪽부터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홍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최종구 금융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하반기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고 내다봤습니다. 경제전망률 전망을 더 내려잡고, 위기 극복에 집중하겠다고 했습니다.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정부의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2.4∼2.5%입니다. 2018년 7월엔 경제성장률 2.8%를 예단했지만, 5개월 만인 2018년 12월 2.6∼2.7%로 내려잡았고 이번에 재차 하향한 겁니다.

그만큼 2019년 상반기 경제정책방향과 비교해 정부의 경제정책이 많이 바뀐다는 뜻입니다. 실제 뉴스래빗이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전문을 분석해보니 상반기 경제정책방향과 사뭇 다른 부분들이 눈에 띕니다 !.!
기획재정부가 2018년 12월 내놓은 '2019년 경제정책방향' 홍보물. 방대한 경제정책방향 보고서를 18가지 항목으로 요약한 이 홍보물에서 정부는 '남북 경제협력'을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로 꼽았다. 자료=기획재정부
미래 전략에서 '남북 경제협력'이 사라졌다는 점이 가장 큽니다. 데이터로 확인해보니 2019년 상반기 '급상승'했던 명사 '남북'이 반년 만에 사라졌습니다. 남북정상회담, 북미1차 정상회담으로 훈풍이 불던 남북 경제협력은 상반기만 해도 경제정책방향 홍보물에 포함됐을 만큼 주요한 정책이었습니다.

상반기 경제정책방향 '급상승 키워드'가 '남북'이었다면 하반기는 '규제 샌드박스'입니다. 분석 결과 일반명사 '규제'가 매년 비슷한 순위 속 18위를 기록했고, 전에 없던 '샌드박스'는 단숨에 고유명사 중 빈도 수 1위로 등장했습니다.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은 6개월 새 어디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어떤 정책이 생기고 사라졌을까요. 매 보고서는 60~80페이지로 방대하지만 빈출 키워드를 뽑아보니 트렌드가 보였습니다. '남북'의 향방과 '규제 샌드박스'의 미래, 데이터로 자세히 알아보시죠 !.!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정부는 매년 상·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보고서를 내놓는다. 대한민국 정부의 경제 운용 주체인 기획재정부가 내년 어떻게 경제 정책을 운영할지를 구체적으로 대내외에 설명하는 공식 자료다.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전문은 모두 68페이지다. PDF 파일 형식으로 된 이 보고서를 인식 가능한 텍스트로 변환, 전체 내용을 형태소 분석했다. 문서에 등장한 모든 형태소를 품사 별로 집계해 출현 빈도를 따졌다.

의미 파악을 위해 품사 중 '명사'에 주목했다. 명사는 일반명사와 고유명사로 나뉜다. 일반명사는 '지원', '확대' 등 사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단어들이다. 고유명사는 '샌드박스', '고용부', '최저임금' 등 사람이나 장소의 이름이다.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2018년, 2017년 보고서와 비교해본다. 뉴스래빗이 2019년 1월 분석한 2019년 경제정책방향 텍스트 분석 데이터를 활용한다. 2017년부터 2019년 하반기까지 대한민국 경제정책방향이 얼마나 일관성 있었는지, 변했다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본다.
2019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톱10
'지원', '확대', '투자' 순
하반기 경제정책 보고서에서 가장 많이 등장한 일반명사는 '지원'입니다. 전체 68페이지에서 총 253회 등장했죠. '확대'가 175회로 뒤를 이었습니다. 이 두 단어는 2018년 상반기, 2019년 상반기, 2019년 하반기 연속 가장 상위에 포진됐습니다. 특정 경제 분야나 사업에 정부가 지원을 확대하는 건 매 경제정책방향 보고서마다 항상 많이 등장하는 명사란 뜻입니다.

빈도 수 상위 10위 내 일반명사가 상당수도 그렇습니다. '추진(113회)', '경제(111회)', '강화(100회)' 등도 보고서 형식에 일반적으로 많이 쓰는 명사입니다. '지원'이나 '확대'처럼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명사입니다. 정부 주도로 어떤 분야, 어떤 주체에게 투자나 지원을 확대할지 방향을 설명하는 자료가 경제정책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다만 지난 경제정책방향 내용과 비교했을 때 순위 변화는 있습니다. 상위 10개 고유명사 중 2019년 상반기에 이어 순위를 지킨 건 '지원', '확대', '투자' 뿐입니다.

2019년 하반기에도 상반기와 비슷한 명사들이 나왔지만 '기업', '추진', '경제', '사업', '강화' 등의 명사가 상반기 대비 1~2계단 하락했습니다. 2019년 상반기에 일반명사 8위였던 '산업'이 하반기 4위로 올라와 그 자리를 채웠습니다.

20위까지 범위를 늘려봐도 모두 내용과 상관 없이 자주 쓸 만한 명사 뿐입니다. 특징적인 일반명사로는 '규제'가 유일합니다. 총 64회 쓰여 일반명사 중 18위를 차지했습니다. 보통 '확대', '강화', '추진', '활성화' 등 이후 중점적으로 '할 일'에 대한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문서에 '규제'는 낯섭니다. 2018년 상반기에도, 2019년 상반기에도 순위에 없다가 새로 등장한 단어입니다.
반년만에 사라진 '남북'
'미국'·'중국'도 2~4회 불과


2019년 상반기 '톱10' 고유명사 중 하반기까지 상위권을 차지한 키워드는 '고용부', '최저임금', '물류', '바이오' 입니다. 상반기 고유명사 2위였던 '중국', 공동 3위였던 '미국'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확인해보니 2019년 하반기엔 미국이 2회, 중국이 4회 정도 등장한 데 그쳤죠.

감소가 가장 눈에 띄는 고유명사는 '남북'입니다. 하반기 경제정책에서 '남북'은 단 한차례도 언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서 기획재정부가 2018년 12월 내놓은 '2019년 경제정책방향'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 선명합니다. 방대한 경제정책방향을 18가지 항목으로 요약한 이 자료에서 문재인 정부는 '남북 경제협력'을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 중 하나로 꼽았습니다. '남북'은 상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총 9회 등장, 고유명사 중 9위를 차지할만큼 중요한 키워드였습니다.

2019년 1월 정부는 경제정책방향에 "남북경협 등 미래 도전요인에 대비한 선제적 투자 및 준비를 본격화하겠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철도, 도로를 연결 및 현대화사업", "산림 협력 및 한강하구 공동 이용", "북한의 국제금융기구(IMF, WB) 가입", "남북 공동특구 구체화를 위한 공동조사 및 연구" 등을 추진하겠다고 상세히 적었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판문점에서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으로 넘어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6개월만에 이 '남북' 키워드는 하반기 문서에서 아예 종적을 감췄습니다. 상반기 9위에서 6개월 만에 '0건'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2019년 2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미북정상회담이 예상 밖 결렬로 끝나면서 다시 경색된 남북관계가 하반기 경제운영방향 변화에 결정타를 날린 것으로 보입니다. 남북경협 청사진을 그리기 어렵다고 문재인 정부도 판단한 셈입니다.
전에 없던 '샌드박스',
고유명사 중 단숨 1위


매번 추이가 비슷한 일반명사보다 고유명사 빈도를 보면 정부의 경제정책이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고유명사 빈도 1위가 전체 명사 중 100위 밖이지만 따로 살펴보는 이유입니다.

2019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가장 자주 등장한 고유명사는 '샌드박스'입니다. 샌드박스(sandbox)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규제를 받지 않고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수 있도록 한 제도를 뜻합니다. 아이가 놀이터 모래판에서 마음껏 놀 듯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펼치도록 규제장벽을 없애는 일입니다. 규제 샌드박스가 도입되면 규제에 막혀 내놓지 못했던 새로운 기술, 서비스를 빠르게 출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 [오디오래빗] ‘샌드박스’ 미니경제용어
그래서 '샌드박스'는 빈도 기준 상위 20개 단어 중 '규제'와 맥을 같이 하는 단어입니다. 전체 내용에 총 23번 등장해 고유명사 중 1위를 기록했습니다. 정부가 올 초부터 박차를 가하고 있는 규제개혁 관련 정책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부 경제정책방향 보고서 속 고유명사 '샌드박스'의 2019년 상·하반기 비교. 2019년 상반기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다가 2019년 하반기 관련 내용이 대폭 늘었다(공백은 '결과 없음').
일반명사 '규제'나 고유명사 '샌드박스' 모두 2019년 상반기 경제정책방향 분석에서 상위권에 없던 키워드입니다. 고유명사 '샌드박스'가 포함된 문장을 살펴볼까요.

이번에 처음 상위권에 등장한 단어지만 존재감은 큽니다. 정부는 규제샌드박스 승인 기업에 "제품 제작, 사업화, 실증특례, 책임보험 가입 등에 필요한 자금", "사업화, 판로개척, 해외진출 등을 위한 컨설팅" 등 다양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합니다. 또한 규제샌드박스 승인 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VC)에게 우대 혜택도 주겠다고 합니다.

사라진 '남북' 대신 '샌드박스'
경제정책 생명력도 '불확실성'

기재부는 2019년 상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 당시 홍보물을 같이 공개했습니다. 방대하고 어려운 경제정책방향의 '핵심 내용'만 보기 편하게 정리한 20페이지짜리 브로슈어입니다.
남북 경제협력은 2019년 상반기에만 해도 정부가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경제정책 중 하나였습니다. 방대한 전문에서 뽑은 '4개 분야 18개 정책' 중 하나로 꼽을 정도였으니까요. 정부는 홍보물에서 "실현 가능한 사업부터 단계적 추진하겠다"고 할 만큼 빠른 추진에 강력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죠.

북한 비핵화와 미국의 대북 제재 완화 줄다리기 사이에서 남북관계는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9년 6월 30일 G20 정상회의 차 일본에 온 트럼프 대통령의 깜짝 제안으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판문점에 만나는 깜짝 이벤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협상을 이어가자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을 뿐 북한 비핵화 관련 불확실성은 여전한 상황입니다. 대외 불확실성에 한반도가 흔들리는 사이 '남북 경협' 미래 어젠다도 반년 만에 자취를 감춰 버린 겁니다.

'남북'이 사라진 사이 이번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가장 트렌디한 키워드는 다름 아닌 '샌드박스'입니다. 지난 상반기 '남북 경협'이 경제정책의 미래로 그려졌다면 하반기엔 '규제 샌드박스'가 그렇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9년 7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수출입은행에서 2019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을 가졌다. 사진=연합뉴스
규제 개혁 관련 정책은 이번 보고서에 처음 등장했지만, 분량이 적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보고서에 각종 지원 정책을 쏟아냈고, "사례 100건을 조기 창출했다", "혁신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고무적 진단까지 아낌 없이 적었습니다. 상반기 남북 경제협력도 보고서에 적힌 대로라면 당장 추진될 것만 같았습니다.

6개월 뒤인 2020년 상반기 '규제 샌드박스'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요. 6개월에 한 번 발표하는 경제정책방향 내용 대부분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뉴스래빗이 경제정책방향 전문을 해부해보니, 정부가 준비하는 '미래 먹거리'도 6개월에 한 번씩 바뀌고 있음이 데이터로 드러납니다. 불확실성과 미래 전략 사이에서 국가 경제 정책의 생명력도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
# DJ 래빗 뉴스래빗 대표 '데이터 저널리즘(Data Journalism)' 뉴스 콘텐츠입니다. 어렵고 난해한 데이터 저널리즘을 줄임말 'DJ'로 씁니다. 서로 다른 음악을 디제잉(DJing)하듯 도처에 숨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발견한 의미들을 신나게 엮어보려고 합니다. 더 많은 DJ 래빗을 만나보세요 !.!

책임= 김민성, 연구= 강종구 한경닷컴 기자 jongg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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