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 '中본토인 대상 홍보전'으로 확대

시민들, 주요 쇼핑가·고속철역서 북경어로 구호 외쳐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가 행정부에 대한 불만 표출에서 더 나아가 중국 자체를 겨냥하는 방향으로 변화하는 모양새다.

8일 CNN,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과 현지 언론에 따르면 홍콩 시민들은 전날 카오룽(九龍·북경어 주룽) 반도 일대에서 주최 측 추산 23만명, 경찰 추산 5만6천명이 참여한 가운데 집회를 진행했다.

이날 집회는 지난달 초 중국 송환 반대를 뜻하는 '반송중'(反送中) 등의 손팻말을 든 시민들이 거리 시위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홍콩섬 바깥에서 열렸다.입법회나 정부청사가 있는 홍콩섬 대신 관광객이 몰리는 카오룽 지역 주요 쇼핑가와, 홍콩과 중국 본토를 잇는 관문인 웨스트 카오룽 고속철역 등에서 중국 본토인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홍보전을 벌인 것이다.

주최 측은 그들의 불만을 "직접 중국에" 전달하는 것이 이날 집회의 주된 목적이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의 검열 때문에 본토에선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의 진상을 알기 힘든 만큼 홍콩을 찾은 본토인들을 직접 만나 중국의 열악한 사법체계와 인권실태를 알리겠다는 것이었다.그런 까닭에 이날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홍콩에서 쓰이는 광둥어나 영어 대신 북경어로 "범죄인 인도법안 철회" 등 구호를 외쳤다.

하지만, 현지 경찰은 웨스트 카오룽 고속철역 주변에 2.1m 높이의 바리케이드를 설치하는 등 주요 시설물에 대한 시위대의 접근을 철저히 차단했다.

이런 조처에는 중국 본토 법이 적용되는 입국심사·세관 구역 등이 있는 웨스트 카오룽 고속철역에 시위대가 난입할 경우 자칫 중국 당국이 개입하는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현지시각으로 오후 3시 반쯤 시작된 집회는 오후 7시께 마무리됐다.

하지만 일부 참가자는 쇼핑가인 몽콕 일대 도로를 점거한 채 시위를 이어갔고, 진압에 나선 경찰은 이들 중 5명을 체포해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을 방문한 중국 본토인이라는 황모(32)씨는 WSJ과의 인터뷰에서 "왜 (홍콩) 사람들이 송환법을 원치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어떤 형태의 폭력도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송환법에는 홍콩과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홍콩 시민들은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중국 정부가 반체제 인사나 인권운동가를 본토로 송환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거센 반발이 일자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林鄭月娥) 행정장관은 사과와 함께 송환법 추진 보류를 선언했지만, 시위대는 법안의 완전한 철회와 행정장관 사임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현지 로펌에서 사무보조원으로 일한다는 페니 라우는 "정부가 우리를 무시하는 한 시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