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상과 추상 멋진 줄타기…추리소설 같은 색채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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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화가 김정운 씨, 한경갤러리 개인전중견 서양화가 김정운 씨(59)의 그림은 알록달록하지만 혼란스럽다. 그의 손끝에서 던진 정교한 미끼는 큰 궁금증을 낳고, 그만큼 그림을 보고 난 뒤 여운은 짙다. 김씨는 스위스 정신의학자 헤르만 로르샤흐가 1921년 발표한 인격진단검사(잉크 얼룩을 피실험자에게 보여주고 어떻게 보이는지 묻는 방식)처럼 관람객에게 다양한 질문과 메시지를 던진다. 김씨의 작품이 이뤄낸 심미적 해석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김씨의 이런 색다른 작품 경향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 1층 한경갤러리에서 오는 26일까지 열리는 개인전을 통해서다. ‘푸른 꽃과 꿈(Blue flower+Dream)’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구상과 추상의 하모니를 꾀한 작품을 비롯해 여행용 가방 위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풍경, 머리에 물건을 이고 가는 여인의 뒤태를 잡아낸 작품 등 근작 20여 점을 걸었다. 일부 추상성이 짙은 단색 계열의 작품은 잘 짜인 추리 소설을 읽고 느끼는 감성을 화면에 쏟아낸 최근작들이다.작가는 “마음의 안식처와 같은 예술에서 현대인의 부대끼는 일상을 풀어내려 했다”고 했다. 계명대 미대를 나와 40대에 뉴욕 미술실기전문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한 그는 미국 유학 시절 겪은 이방인적 삶과 애환을 붓끝에 실어냈다. 여행 가방을 비롯해 소반, 가구, 오래된 사진 등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 있는 물건에 풍경을 담아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문화 이질성의 접점을 찾았다. 지난 삶의 버팀목, 덧없이 상실된 시간, 과거 흔적의 이미지들은 애잔한 그리움과 향수를 내뿜는다.
작가는 지난해부터 추상과 구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추리소설 같은 하모니즘 미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수천 번 붓질을 가미하는 제작 행위의 흔적을 도드라지게 강조해 인간의 미적 감성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를 재현하고 싶었다고 했다. 바람결에 흔들리는 꽃잎이나 벌거벗은 여체들을 현란한 색채의 군무처럼 화면에 응축했다. 화면 곳곳에 작은 금박지를 붙여 오브제의 다양성도 꾀했다. 작품 제목을 ‘꽃’시리즈로 붙여 구상미학을 한껏 버무렸다. 그냥 멀리서 보면 밝은 색조의 꽃과 누드가 보이는 화면이 가까이 다가가면 추상적 색채미로 변주한다. 견고한 구성과 짜임새, 빛에 따라 출렁이는 색감, 꿈틀거리는 생명력이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 덩어리로 다가온다.
작가는 “영국 추리소설가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 《스타일스 장 살인 사건》 《오리엔트 특급 살인 사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등을 읽으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는 방식으로 화면의 색층구조를 짰다”고 설명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