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주 40시간 추진 '진통'…"차라리 52시간으로 돌려달라"

현장에서

"일은 그대로…근무시간만 줄여
근로자들 업무 피로 늘었다"

정소람 금융부 기자
시중은행에 다니는 이모 대리는 요즘 아침마다 회사 주변을 한참 서성이다가 출근한다. 이 은행이 이달 들어 주 40시간 근로제를 시행하면서다. 보안 시스템이 8시부터 작동되다 보니 그 전엔 사무실에 들어갈 수 없다. 사무실에 가도 PC 오프제 때문에 9시 전에는 컴퓨터를 켤 수 없다. 점심시간도 마찬가지다. 이 대리는 “차량 정체를 피해 일찍 출근하고 이 시간에 밀린 업무를 해왔는데 이제는 갈 곳도 없고 업무 시간도 촉박해졌다”며 “주 52시간만이라도 채워서 일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은행권의 근로시간 단축을 둘러싸고 일부 행원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인력 확충 없이 근로시간만 줄면서 업무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직원이 연장근로를 하게 해달라고 은행에 역으로 요구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8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부 은행은 주 40시간 근로제를 도입하거나 단계적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전 은행권에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됐다. 신한은행은 한발 더 나아가 주 40시간 근로를 시작했다. 국민은행 등 몇몇 은행도 주 40시간 근로제 적용을 준비 중이다. 한 은행 임원은 “업무 자동화와 불필요한 회의 간소화, 유연근무제 등을 통해 근로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모든 은행이 지난해부터 근로시간 축소에 대비해온 만큼 주 40시간제 시행에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주 40시간 근로제를 적용한 일부 은행 지점 근로자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출퇴근 시간을 너무 빡빡하게 관리하다 보니 오히려 업무에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서울 도심의 한 지점에서 기업 여신을 담당하는 행원은 “중기·소호 여신 업무가 많아 쉴 새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인데 일을 제대로 마감하기가 힘들다”며 “매일 쫓기듯 퇴근하다 보니 사고를 내진 않을까 걱정도 된다”고 털어놨다. 근로시간 준수 여부가 부서장 평가에 반영되기 때문에 자체 연장근로를 하기도 어렵다는 게 은행권 얘기다.

한 은행의 지점장은 “근로시간만 단축한다고 스마트한 업무 환경이 조성되는 게 아닌데 은행들이 너무 숫자에 매몰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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