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兆 돌파한 국민연금…덩치에 걸맞게 독립성 강화 '급선무'

고령화로 기금 소진 가속화
소득 9% 보험료율 유지 땐
2042년부터 적자, 2057년 '바닥'
국민의 노후자금인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이 700조원을 넘어섰다. 1988년 기금 설립 이후 31년 만이다. 세계적으로도 기금 규모가 700조원을 넘은 연기금은 일본 공적연금, 노르웨이 국부펀드에 이어 국민연금이 세 번째다.

국내는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했지만, 덩치에 걸맞은 시스템과 역량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저출산과 급속한 고령화로 기금 소진 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지만 제도 개혁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8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 적립금은 지난 4일 기준 701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638조8000억원에서 6개월여 만에 62조4000억원 늘어났다. 지난해 한국 명목 국내총생산(GDP) 1893조원의 37%에 달하는 액수다.

1988년 5300억원으로 출범한 국민연금 적립금은 31년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국민이 낸 보험료와 운용수익금(올 4월 말 현재 337조3000억원)이 동시에 쌓이면서다. 지난해 시행한 4차 장기재정 추계에 따르면 2041년에는 적립금이 1778조원까지 불어난다.문제는 그 이후다. 소득의 9%인 현행 보험료율을 그대로 두면 국민연금은 2042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57년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줄고 수급자는 늘어나는 구조적 요인 때문이다. 2013년 3차 추계 당시보다 적립기금 소진 시점은 3년, 적자 전환 시점은 2년 앞당겨졌다.

부담을 미래 세대로 떠넘기지 않기 위해선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정부는 재정 안정보다 노후소득 보장에 무게를 둔 네 가지 방안을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했다. 보험료율 인상이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 선택을 미뤘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마저도 국회 공전으로 논의를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최근 새로운 제안을 내놨다.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기초연금으로 통합하고, 국민연금은 내는 만큼 받아가는 소득비례 방식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최근 캐나다연금을 방문하면서 이 같은 구조개혁 방안을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사회적 합의를 통한 연금 개혁을 성공하려면 국가가 걷어간 보험료를 제대로 운용한다는 신뢰가 우선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기금운용위 위원들은 재계, 노동계, 시민단체 등의 대표로 구성돼 있다. 정부와 정치권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면 캐나다연금을 운용하는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에는 정부 관계자가 한 명도 없다. 정부의 입김에서 독립돼 있다는 평가다.

최광 전 국민연금 이사장은 “현 정부 들어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독립성이 크게 훼손되고 있다”며 “지금 국민연금이 가장 신경써야 할 건 독립성”이라고 말했다. 전광우 전 국민연금 이사장도 “기금운용 거버넌스(지배구조)부터 개혁해야 나머지 문제도 풀 수 있다”고 했다.

기금 700조원 규모에 걸맞은 운용의 전문성과 역량을 갖춰야 기금 고갈 시기를 조금이나마 늦출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유창재/황정환 기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