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굴지의 갤러리인 페이스(PACE)가 중국 베이징에서 11년 만에 사실상 철수한 사실이 알려졌다. 8일(현지시간) 아트뉴스와 페이스서울 등에 따르면 베이징 798예술구 창의광장에 위치한 페이스베이징은 지난달 문을 닫았다.
미국에 기반을 둔 페이스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맞춰 첫 해외지점인 베이징 전시장을 열었다.
이를 시작으로 리만머핀, 화이트큐브, 가고시안, 페로탱 등 서구 화랑들이 앞다퉈 중국·홍콩 시장에 진출했다. 페이스는 그러나 올해 들어 10년 단위로 맺는 베이징 지점의 임대 계약을 연장하지 않았으며, 전속 작가와 외부 프로젝트 관리를 위한 사무실만을 남겼다.
전시는 4월 27일 폐막한 미국 작가 리처드 터틀 개인전이 마지막이었다.
페이스베이징 폐쇄는 미·중 무역분쟁 격화와 무관하지 않다. 페이스 창립자인 아르네 글림처는 외신 인터뷰에서 "지금 시점에서 중국 본토에서 사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면서 "미국에 온 중국 작가에게 트럼프가 부과하는 관세와 중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작가에 시진핑이 부과하는 관세가 (사업을 접는 데) 결정타"라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외국산 미술품에 33% 관세를 부과했으나, 세율이 너무 높다는 지적에 따라 약 5년 전부터 이를 점차 완화해왔다.
이 세율이 20%대 초반까지 내려간 가운데, 미국산 미술품만큼은 33%로 원상 복구된 상황으로 알려졌다. 미국 행정부도 지난해 8월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물리는 방안을 발표하면서 그 대상에 골동품과 미술품을 포함했다.
비우호적인 시장 환경도 '중국 전초기지'라는 점에서 상징적으로 유지했던 베이징 전시장을 끝내 닫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글림처 대표는 같은 인터뷰에서 "시진핑이 정권을 잡은 이후 중국인들은 부를 드러내는 것을 눈에 띄게 두려워하고 본토 사람들은 중국에서 사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페이스는 당분간은 홍콩과 서울 갤러리를 유지하면서 다른 쪽으로 판매 반경 확대를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는 1960년 미국의 미술품 딜러이자 영화 프로듀서인 글림처가 보스턴에 처음 설립했으며 3년 뒤 뉴욕 맨해튼으로 이전했다. 현대 미술계를 이끄는 갤러리로 발돋움한 페이스는 알렉산더 칼더, 빌럼 더 코닝, 장샤오강, 제임스 터렐을 비롯해 국내에서는 이우환을 전속 작가로 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