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노현 LS전선 사장, 전쟁터도 마다 않는 '현장밀착 영업'의 달인

CEO 탐구

"전 세계가 내땅
시장 있으면 어디든 간다"
지난 5월 명노현 LS전선 사장은 리비아 출장을 추진했다. 리비아는 리비아국민군과 친리비아통합정부 민병대 간 교전이 벌어지고 있어 현재 ‘여행 금지’ 국가다. 국가기반시설이 마비된 리비아 시장을 어떻게든 한 번 뚫기만 하면 전후 복구 과정에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명 사장은 판단했다. 아직 계약이 무르익은 상황도 아니어서 영업 담당 임원을 보내도 될 일이었다. 하지만 명 사장은 “내가 가지 않는데 누가 전쟁 지역에 총탄을 뚫고 영업하러 가겠느냐”며 리비아 시장 개척의 선봉에 섰다.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고객 찾아 아프리카·남미·중동으로교전 상황이 더욱 심각해져 리비아를 방문하는 데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명 사장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그는 늘 직원들에게 “전 세계가 ‘내 땅’이라는 생각으로 자신만의 작전을 세워 신시장 개척에 나서라”고 주문한다.

명 사장 작전의 기본은 ‘현장 밀착형 영업’이다. 한 달의 절반을 해외 출장으로 보낼 정도다. 직항 항공편이 없어 왕복 비행 시간만 이틀이 넘게 걸리는 아프리카와 남미, 때로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중동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사업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무조건 날아간다.

계약서에 서명할 때만 현장을 가는 게 아니다. 협상 과정부터 줄기차게 고객을 만난다. 고객의 요구사항을 직접 들어야 직원들과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가족 관계, 성향, 취미 등까지 미리 파악해 자녀를 위한 K팝 CD를 선물하면서 고객 마음의 문을 열기도 했다.지난 1월에는 국내 업체 최초로 대만에 해저케이블을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다. 대만이 대규모 해상 풍력 단지를 조성하려 한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부터 그는 한 달에 한 번씩 대만 고객사를 찾았다. 명 사장은 직원들과의 대화에서 “내 꿈은 우리 회사를 ‘큰 회사’로 키우는 것”이라며 “배전·가공·해저케이블 등에서 각각 1조원 이상의 연 매출을 달성하고 싶다”고 했다.

영업 담당 직원들을 대우해야 한다는 인식도 강하다. 아프리카 등 장거리 출장을 갈 때는 비즈니스석을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또 치안이 좋지 않거나 외교부에서 여행 유의 지역으로 지정한 곳에 갈 경우 안전상 5성급 호텔에 머무르도록 했다.

뛰어난 재무 감각 지닌 CFO 출신그렇다고 그가 ‘영업맨’ 출신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재무라인에서 성장해 최고재무책임자(CFO)까지 지낸 ‘재무통’에 가깝다. 그만큼 재무적 감각도 뛰어나다. 2016년 LS전선아시아의 국내 상장은 대표적 사례다. LS전선은 1996년 베트남 하이퐁에 LS비나 케이블(LS-VINA)을 설립해 전력케이블을 생산하며 베트남 경제와 함께 급성장했다. 2006년에는 호찌민에 LS 케이블 베트남(LSCV)을 설립해 통신케이블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베트남 진출 첫해인 1996년 19억원이던 매출은 20년 만인 2015년 250배 늘어난 4900억원을 기록했다.

두 법인은 현지 전선 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하며 베트남 1위 종합 전선 회사로 성장했다. 구자엽 LS전선 회장과 명 사장은 ‘베트남 1위’에 머무르지 않고 ‘동남아시아 1위’ 종합 전선 회사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오스,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주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의 인프라 개발이 본격화되면 시장이 급격하게 커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때를 대비하기 위해 투자자금이 필요했다. 베트남 생산법인 LS-VINA와 LSCV를 거느린 지주회사 LS전선아시아를 설립해 상장하기로 한 이유다.

베트남 거래소에 상장하는 방법도 고민했다. 하지만 국내 개인투자자가 베트남 상장 주식을 사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명 사장은 LS전선아시아를 국내 증시에 올리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국내 투자자들에게는 베트남 성장 기업에 투자하는 기회가 될 수 있고, 회사는 더 많은 투자금을 모을 수 있었다. LS전선아시아는 해외 법인의 첫 ‘국내 유턴 상장’ 사례로 화제가 됐다.기업공개(IPO)로 유입된 자금은 설비 증설과 신규 사업에 재투자했다. 명 사장이 강조하는 ‘선순환 투자’다. 하이퐁과 호찌민 공장에 추가 투자를 했고, 지난해 11월에는 미얀마에도 공장을 준공했다.

“현지화에 답이 있다”

신시장 개척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확산됐다. 전선업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선업이 ‘국가 기간산업’이라고 판단한 각국 전력청들은 수주전에서 자국 기업들을 우대했다. 외국 기업에 대해서는 장벽을 높였다. 명 사장은 현지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지역별 거점 생산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 현지 기업과 합작법인 설립에 공을 들였다.

시장 확대도 멈추지 않았다. 아시아와 중동 등 기존 시장뿐만 아니라 프리즈미안, 넥상스 등 글로벌 전선업체의 ‘텃밭’인 유럽 시장 공략에 집중했다.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를 맞아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에서 초고속 통신망 구축이 활발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광케이블 수요가 급증할 것이라고 예측한 명 사장은 2017년 프랑스에 광케이블 판매법인을 설립했다. 담당 부서의 검토부터 최종 결정까지 3개월이 채 걸리지 않은 말 그대로 ‘속전속결’이었다.

유럽에 생산 거점도 마련했다. 지난 5월 초 준공한 폴란드 광케이블 공장은 국내 전선업계 최초의 유럽 공장이다. 그의 수요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올해 말까지 주문이 밀려 있어 공장은 ‘완전 가동’ 상태다. 전선 공장으로는 이례적으로 준공 첫해인 올해부터 흑자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고군분투’해온 신흥국 해외 법인들도 점차 성과를 내고 있다. LS홍치전선은 2010년 LS전선이 중국 전력케이블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인수한 회사다. 하지만 외자 기업이 중국 내수시장의 벽을 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명 사장은 LS홍치전선의 주요 시장을 중국 내수시장에서 외부로 돌리기로 했다. 낮은 가격과 제품 경쟁력을 무기로 중동과 남미에 제품을 수출하기로 한 것. 그 결과 LS홍치전선은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인수한 회사를 수출 거점으로 쓰는 ‘역발상’이 통한 것이다.

인도 생산법인도 현지 업체들이 95% 이상 점유하고 있던 시장에서 지난해 흑자 전환했다. LS전선 실적은 2016년 매출 3조490억원, 영업이익 835억원에서 지난해 매출 4조1993억원, 영업이익 1102억원으로 성장했다.

■명노현 LS전선 사장 프로필△1961년 인천 출생
△1986년 인하대 무역학과 졸업
△2006년 연세대 국제경영학 석사
△1987년 금성전선(현 LS전선) 입사
△2005년 LS전선 경영기획담당 이사
△2008년 LS전선 재경담당 상무
△2011년 LS전선 경영관리부문장(전무)
△2015년 LS전선 경영관리총괄 대표이사 부사장
△2017년 LS전선 대표이사 부사장
△2018년 LS전선 대표이사 사장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