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특허 징벌적 손해배상, 재판의 전문성 확보해야

특허 침해 '3배수 배상' 9일 시행
침해 여부·권리가치 판단이 핵심
소송 전문성 살려 제도 안착시켜야

오세중 < 대한변리사회 회장 >
특허권 침해소송에서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9일부터 시행됐다. 정확히 말하면 ‘3배수 손해배상’이다. 타인의 특허권을 고의로 침해할 경우 손해배상액을 3배까지 물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독일, 일본 등 특허권 침해에 대해 민사와 형사 제재가 엄격히 구분된 대륙법 체계 국가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제도다. 우리나라가 미국 등 영미법 체계 국가가 적용하고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한 것은 특허권에 대한 강력한 보호 체계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특허도 제값을 받기 위해선 품질이 좋아야 한다. 품질 좋은 특허는 연구개발에 대한 활발한 재투자를 통해 만들어지는데, 기업 입장에선 특허권에 대한 확실한 인센티브가 없다면 공염불에 불과하다. 기껏 특허를 등록했지만 이를 보호해줄 제도가 받쳐주지 못하면 굳이 특허품질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그랬다. 국내 중소기업들은 애써 얻은 특허가 침해당해도 소송을 제기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소송 기간과 비용이 상당한 데다 승소하더라도 손에 쥐는 게 없기 때문이다.특허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특허권 침해소송에서의 손해배상액은 평균 6000만원에 그쳤다. 미국(65억원)과 비교하면 민망한 수준이다. 양국의 경제 규모를 고려해도 9분의1에 불과하다. 중국 베이징 지식재산권법원의 최근 특허 침해 평균 손해배상액과 비교해도 4분의 1 수준이다. 이 때문에 자금력과 조직력을 갖춘 해외기업들은 이 같은 국내 사정을 악용하기도 한다. 특허 침해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손해배상액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반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미국은 다르다. 미국은 1836년 개정 특허법과 1854년 연방대법원 판결에 의해 3배 손해배상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2016년 연방대법원의 할로(Halo) 판결 이후에는 고의 침해 인정 요건까지 완화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타인의 특허권을 침해하면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회사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확립돼 있다. 실리콘밸리는 미국이 150년간 이어온 특허에 대한 확고한 신념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변리사회와 특허청이 이 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꾸준히 외쳐왔고, 국회가 이에 호응해 입법적 결단을 내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권리보호의 강화는 연구개발 재투자를 촉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손해배상제도는 기술 혁신을 주도하는 핵심 동력이 된다. 즉, 확실한 권리보호 체계 없이는 특허를 통한 혁신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새로 도입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의 정착 여부는 향후 우리나라 혁신 성장에 대한 척도가 될 수 있다.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당장 고의침해 인정 범위, 손해배상액 산정 등은 논의만 무성할 뿐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가 없다. 무엇보다 재판의 전문성 확보가 시급하다. 특허권 침해소송에서의 전문성 확보는 소송 핵심인 침해 여부와 권리가치를 판단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인 변리사의 소송 참여가 배제되고 특허법원 판사의 잦은 보직 이동과 함께 법원 기술심리관의 역할이 오히려 축소되고 있는 국내 현실은 제도 정착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제도 도입을 위해 애써온 특허청 등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와 각 정당, 산업계 및 학계, 전문가인 변리사 등이 모두 함께 제도의 효과적인 실행과 정착을 위해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