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동의 3분IT] "우회 수입도 어렵다"…일본 간 이재용 '마지막 시나리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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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日 대형은행 고위 임원 만나 양해 구할 듯[노정동의 3분IT]는 전자·IT 업계 최신 이슈를 3분 만에 둘러보는 코너입니다."일본 기업이 반도체 소재를 직수출하지 않고 해외를 통해 '우회 수출'로 한국에 보내면 아베 정부가 그 기업을 가만히 앉아 보고 있겠나."국내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일본 정부의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대응책으로 '우회 수입'이 거론되는 데 대해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대형은행들, 삼성 고객사 주요 주주로 '신뢰' 중요
법 저촉 여부 상관 없이 우회수입 가능성은 희박
일본 정부가 1차 수출규제 목록에 올린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감광액),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3개 품목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반도체·디스플레이를 생산하는 데 사용되는 핵심 소재다. 최대 90% 이상 일본 기업들에 의존하고 있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7일 도쿄 출장길에 오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사진)은 이날 일본 대형 은행 고위 관계자들을 만날 것으로 보인다. 현지 민영방송 ANN은 이 부회장이 일본 대형 은행, 반도체 제조사 등을 만나 소재 조달 정체 대책을 협의할 것이라고 보도했다.삼성전자의 반도체 소재 비축량은 길게 잡아도 4개월 수준으로 알려졌다. 생산 차질이 불 보듯 뻔하다. 최악의 경우 생산라인 가동 중단 사태까지 일어날 수 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기업 신용도 하락도 불가피하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요가 적은 낸드(NAND) 플래시부터 감산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이 일본 대형 은행들을 만나는 것은 이들이 대부분 삼성전자와 거래하는 현지 기업들의 '주요 주주'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 포토레지스트를 공급하는 JSR, 스미토모화학, 신에츠화학 등이 대표적이다. 현지 은행들은 삼성전자의 일본 고객사인 소니의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소니 등 일본 고객사에 제품 납품 차질 가능성을 알리는 한편, 일본 반도체 소재 기업들의 우회 수출 여부까지 논의 대상으로 올리려면 이들 대형 은행을 만나는 게 필수적이다.재계 관계자는 "일본 기업들뿐 아니라 대형 은행의 경우 '약속'을 굉장히 중요시한다"며 "때문에 이 부회장이 우회 수입으로 소재를 조달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보고 납품 지연에 대한 양해를 미리 구하러 간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기업들이 '국외'에서 생산하는 반도체 소재를 우회적으로 삼성전자에 공급하는 방법도 사실상 어렵다고 봤다. 해외 법인이 일본 본사와 관련 없는 별도 법인 형식이라 해도 이번 사안이 일본 정부의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된 만큼 민간 기업이 나서는 걸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단 얘기다. 일본 문화의 속성상 현 국면에서 특정 기업이 함부로 나섰다간 '배신자' 낙인이 찍힐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삼성전자에 에칭가스를 공급하는 스텔라는 대만·싱가포르에 생산 거점이 있으나 일본 정부 승인 없이는 공급이 어렵다는 입장을 삼성전자에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감광액을 납품하는 TOK 역시 삼성전자에 "우회 수출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스미토모화학 등 일본 주요 소재 공급업체들에 "철저한 서류 준비를 통해 안정적인 소재 공급을 부탁한다"는 취지의 공문을 발송했다. SK하이닉스도 구매담당 임원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소재 확보에 나서는 한편 SK하이닉스 일본 법인을 통해서도 조달을 요청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기업인으로서 이 사안을 푸는 데 한계가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애초 출장 목적도 소재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걸 인정하고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직접 얼굴을 비춰 기업의 신뢰도를 지키는 게 첫 번째 아니겠느냐"고 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