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영화 오가는 세계…色다른 무대예술로 구현"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 연출가 오경택

브로드웨이 화제작 한국 초연
무대·의상·조명 등 재창작
다음달 8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의 연출을 맡은 오경택 중앙대 연극학과 교수.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동그란 원판형 무대가 가운데 부분과 이를 감싸는 링 부분으로 구분된다. 고정된 가운데는 현실을, 빙글빙글 도는 링은 영화 속 세계를 상징한다. 분리된 채 움직이는 것만이 아니다. 현실은 컬러, 영화는 흑백으로 처리된다. 하나의 무대에 컬러와 흑백 공간이 공존하게 되는 것이다.

다음달 8일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시티 오브 엔젤’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파격적인 무대 예술을 내세운다. 미국 브로드웨이나 영국, 일본 등에선 무대를 단순히 컬러와 흑백으로 나누는 정도였다. 한국에서 처음 무대에 오르는 이 작품의 연출은 최근 연극과 뮤지컬, 무용 등을 오가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연출가 오경택 중앙대 연극학과 교수가 맡았다. 오 교수는 지난 5월 창작무용극 ‘놋-N.O.T’, 지난 6일 막을 내린 화제의 연극 ‘킬 미 나우’에 이어 올여름 뮤지컬계 기대작인 ‘시티 오브 엔젤’을 무대화한다. 지난 8일 충무아트센터에서 만난 그는 “원작 자체의 형식미가 정말 매력적이어서 연출가로서 꼭 해보고 싶던 작품”이라며 “이번 무대에선 더욱 색다른 형식미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작품은 198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돼 이듬해 토니상 6개 부문을 석권했다. 1940년대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신인 작가 스타인이 당시 유행하던 ‘필름 누아르(암흑가에서 벌어지는 폭력, 범죄 등을 담은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을 보여준다. 스타인이 있는 곳과 머릿속 세계가 각각 현실과 영화세계로 펼쳐진다. 이번 라이선스 공연은 원작의 무대, 의상, 조명 등을 재창작하는 ‘논 레플리카’ 방식으로 제작된다. 오 교수는 극중극 형식에 다채로운 기법들을 접목했다.

“초연한 지 20년이 흘렀고, 무대 기술이 그만큼 발전했으니 더 많은 시도를 해보고 싶었어요. 영화 속 세계를 그리는 만큼 이중 조리개도 씁니다. 관객들이 마치 카메라의 눈으로 무대를 바라보는 듯한 효과가 날 겁니다.”

오 교수는 무대를 재창작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고 했다. 작품을 이루는 각 장면의 길이가 영화처럼 짧고, 배경도 자주 바뀌는 데다 스토리 전개상 두세 명의 인물만 등장하는 장면이 많아 매번 넓은 무대를 꽉 채우기가 만만치 않다는 설명이다. 오 교수는 김문정 음악감독과 함께 또 다른 아이디어도 냈다. 18인조 재즈 밴드를 오케스트라 피트석에 두지 않고 무대 후면에 배치하는 것이다. “원작 악보를 봤는데 14인조로 설정돼 있더라고요. 이것을 18인조로 늘려 과감하게 무대 위에 올리려 합니다. 공간을 활용하는 측면에서나 재즈 음악이 중심이라는 점에서 효과적일 겁니다.”캐스팅에도 음악적 특성을 많이 고려했다고 했다. 스타인 역은 최재림, 강홍석이 맡았다. 스타인이 쓴 시나리오 속 주인공 탐정 스톤 역으로는 이지훈과 테이, 유명 제작자 버디 역엔 정준하와 임기홍이 출연한다. “재즈를 매끄럽게 소화할 수 있는 개성 강한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을 중점적으로 봤습니다. 다들 현실과 영화 속을 오가며 연기하는 만큼 연기력도 중요했죠.”

동시대성을 살리기 위해 일부 각색도 했다. “돈과 권력이 지배하는 할리우드 영화판을 상징하는 버디는 이른바 갑질의 전형을 보여줄 겁니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스타인도 성공을 위해 때론 타협하고 얄팍한 유혹에 넘어갑니다. 이런 이야기에 관객들은 현재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할 수 있을 겁니다.”

다양한 장르를 오가며 활동하는 그는 여전히 하고 싶은 분야와 작품이 많다고 했다. “장르와 상관없이 결국 중요한 건 스토리텔링, 즉 ‘드라마’죠. 그런 의미에서 하고 싶은 작품이 정말 많습니다. 국악과 전통무용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영상과 무용, 음악이 융합된 작품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