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해진 기업…자금조달 규모 8년만에 '최대'

한은, 1분기 자금순환통계 발표

기업 순조달액 1년새 2.7兆 급증
실적 악화로 운영자금 확보 목적
올해 1분기 기업들이 외부에서 자금을 대거 충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력 기업의 실적이 나빠지면서 운영자금을 외부에서 조달한 것이다. 반면 가계의 여윳돈은 최근 3년 만에 가장 넉넉해졌다.
현금창출력 나빠진 기업들한국은행이 10일 발표한 ‘2019년 1분기 중 자금순환(잠정)’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비금융 법인(일반기업)의 순자금조달 규모는 15조8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13조1000억원)보다 2조7000억원 늘었다. 역대 1분기 기준으로는 2011년 1분기(23조7000억원) 후 최대 수준이다.

순자금조달이란 예금, 보험, 주식 등으로 굴린 돈(운용자금)에서 빌린 돈(조달자금)을 뺀 금액이다. 순자금조달이 커졌다는 것은 벌어들인 돈보다 빌린 자금이 더 많다는 의미다. 운용자금에서 조달자금을 뺀 값이 음(-)이면 순자금조달, 그 값이 양(+)이면 순자금운용(통상 여유자금)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투자를 많이 하는 기업은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가계는 여유자금으로 다른 부문에 자금을 공급한다.

기업들이 지난 1분기 순자금조달 규모를 늘린 것은 투자재원 마련보다는 수익성 악화에 따른 운영자금 확보 목적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감기업의 영업이익률(영업이익÷매출)은 올해 1분기 5.3%로 전년 동기(7.5%)와 비교해 2.2%포인트 하락했다. 같은 기간 세전순이익률(세전순이익÷매출)은 5.8%로 2.4%포인트 빠졌다. 올해 1분기 민간설비투자는 전년 동기 대비 6조7000억원 줄어든 33조4000억원이었다.이인규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반도체 경기가 나빠지는 등 주력 기업들의 현금창출력이 약해졌다”며 “기업들이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자금조달을 늘렸다”고 말했다.

가계 여윳돈은 3년 만에 최대

올해 1분기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26조7000억원으로 집계됐다. 2016년 1분기(28조8000억원) 후 최대 수준이며 작년 1분기(18조2000억원)보다는 8조5000억원 늘었다. 가계의 여윳돈이 이처럼 불어난 것은 살림살이가 나아졌다기보다는 주택 구매자금을 줄였기 때문이다.한국은행에 따르면 주택 구입을 가늠할 수 있는 대표 지표인 ‘주거용건물 건설투자금’이 올해 1분기 23조5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26조1000억원)보다 2조6000억원가량 줄었다. 부동산 대출 규제가 강화된 여파로 풀이된다. 가계 자금운용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가계의 운용자금은 35조4000억원으로 5조9000억원 감소했다. 외부에서 빌린 돈인 조달자금은 8조7000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23조1000억원)에 비해 크게 줄었다. 벌어들인 돈은 줄었지만 외부 조달자금 폭이 더 크게 줄면서 순자금운용 규모는 늘어난 것이다.

가계부채 안정성 지표인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비율’(금융자산÷금융부채)은 올해 1분기 2.12배로 전분기(2.08배)와 비교해 다소 나아졌다. 이 비율은 작년 1분기 2.17배에서 2분기 2.15배, 3분기 2.14배를 나타내면서 작년 내내 악화됐었다. 문소상 한은 금융통계부장은 “최근 3년 동안 가계는 금융자산보다는 주택 등 실물자산에 상대적으로 많이 투자해왔다”며 “주택투자 부문이 다시 과열되지 않으면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비율은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