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한제 후폭풍…재건축은 주춤, 신축 아파트는 풍선 효과로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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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감정원, 서울 주간시세 2주연속 0.02% 올라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기정사실화하자 부동산시장에서 차별화 장세가 나타나고 있다. 희소가치가 높아진 입주 5년차 이내 신축과 입주 10년차 전후 준신축 아파트값은 더 뛴 반면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는 재건축 아파트 매수세는 줄어들고 있다. 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는 “실수요자가 저렴한 분양을 기다리며 기존 단지 매입을 미뤄야 분양가상한제 도입 효과를 볼 수 있는데, 향후 서울 인기 주거지역 공급 물량이 별로 없다는 것을 아는 실수요자들이 기존 새 아파트 매수에 나서고 있어 상한제가 약효를 내기 어렵다”며 “상한제로 수익성이 악화된 단지와 정비사업을 연기하는 단지만 일시적으로 약세를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재건축 - 은마·잠실주공5단지 등 매수 문의 '뚝' 끊겨
5년차 -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84㎡ 26억원 최고가
분양 - 둔촌주공·흑석3구역 등 하반기 일정 불투명
재건축 막히니 신축으로11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번주(8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보다 0.02% 상승했다. 정부의 규제 의지 표명에도 지난주(0.02%)와 같은 상승폭을 나타냈다. 주요 재건축 단지가 포진한 강남 3구 가운데 송파구는 전주보다 0.01%포인트 떨어진 0.03% 상승했고, 강남구(0.05%)와 서초구(0.03%)는 전주와 같은 오름폭을 유지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확대 적용’ 발언 이후 강남권 재건축에 쏠려 있던 수요가 신축·준신축 아파트로 넘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구 대치동 대장아파트인 래미안대치팰리스 1단지 전용면적 84㎡는 지난 10일 26억원에 손바뀜하며 신고가를 기록했다. 지난달 27일 25억5000만원에 거래가 이뤄진 데 이어 2주 만에 다시 한번 고점을 갈아치웠다. 대치동 S공인 관계자는 “최근까지 26억원에 물건을 팔려고 했던 집주인들이 호가를 27억원으로 올렸다”며 “분양가상한제 얘기가 나온 뒤부터 매수세가 더 몰려 집도 안 보고 바로 거래하는 사례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달 24일 28억원에 팔린 전용 94.49㎡는 최근 호가가 29억원까지 뛰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서초구 반포동에서도 나타났다. 반포동 H공인 관계자는 “재건축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자 수요가 비재건축 단지로 몰리고 있다”며 “반포자이 같은 10년차 아파트에 매수 문의가 쏟아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신축·준신축의 상승세는 통계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번주 강남 4구 내 5~10년차 아파트 가격은 0.09% 올라 전주 -0.01%에서 큰 폭으로 상승 반전했다.
반면 대치동 은마아파트, 잠실주공5단지 같은 재건축 아파트에 대한 매수 문의는 감소했다. 재건축을 고민하던 투자자 가운데 신축으로 마음을 돌린 수요도 생기고 있다. 대치동 P공인은 “정부가 재건축에 강한 규제 의지를 나타내자 은마아파트 매수세가 크게 줄었다”며 “당초 은마아파트를 사겠다고 찾아왔던 손님이 래미안대치팰리스 등 새 아파트를 찾아달라고 문의하는 사례도 꽤 있다”고 말했다.
잠실주공5단지는 지난달 잇따라 신고가를 경신한 이후 추가 매수가 뜸한 상황이다. 이 아파트 전용 76㎡는 지난달 19일 19억1560만원에 손바뀜하며 직전 최고가를 넘어섰다. 잠실동 A공인 관계자는 “4월 이후 월 30건 이상 거래가 이뤄졌지만 이달 들어 매수 문의가 종전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급매물조차 종전 최고가보다 비싸게 부르는 등 매도·매수자 간 호가 차이가 있다”고 전했다.압구정 J공인 관계자는 “단기적으로 사람들의 심리가 요동치는 분위기”라며 “최근에는 매입 가능한 물건에 대한 문의가 절반 수준으로 줄고 분양가상한제의 영향을 어떻게 예상하는지 물어보는 손님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상한제 효과 못 볼 것”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부분 상한제로 서울 집값을 잡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중장기적으로 서울 시내 공급을 위축시켜 신축이나 입지가 좋은 구축의 희소성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분양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연내 예정돼 있던 공급이 제대로 될지조차 불투명하다.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서울지역에서 재건축, 재개발 등 정비사업을 통해 연말까지 공급될 아파트는 20개 단지, 1만1700가구다. 이 가운데 하반기 최대어로 꼽혔던 강동구 둔촌주공, 흑석3 재개발 등은 분양 시점을 둘러싼 조합원 간 이견으로 연내 분양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재건축을 틀어막으면 리모델링이 가능한 20년차 아파트에 매수세가 유입될 것”이라며 “정부가 시장을 강하게 때릴수록 샌드백처럼 시장에서의 반동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민경진/구민기/양길성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