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처럼 부드러운 색감 지닌 '옻칠 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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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채림, 학고재청담서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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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서울 청담동 학고재청담에서 개막한 채림의 개인전 ‘멀리에서’는 보석의 장식적 의미와 옻의 공예적 가치를 넘어선 순수미술로의 확장을 시도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보석공예와 옻칠을 과감히 분리해 각 재료가 가진 개별적인 아름다움과 새로운 조형적 가능성에 집중한 신작들을 선보인다.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설치작품 ‘비 온 후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개와 진주를 황동과 이를 금색, 은색 등으로 도금한 가지에 올려 브로치처럼 만든 뒤 평면적으로 배열했다. 덩굴과 나뭇가지를 연상시키는 조형요소를 활용해 비 온 뒤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결과 짙은 숲의 향기, 쓸쓸하고 고적한 기운을 작품에 투영했다. 전시장에서 만난 채 작가는 “흰 벽에 드리워진 여러 가지 그림자에 집중했다”며 “그림자를 통해 마치 부드러운 연필 드로잉이 연상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과수원 하늘’ 시리즈도 보석 고유의 조형미에 집중한 작품이다. 이 시리즈에서도 과수원에서 바라본 풍경 속 그리움과 추억에 대한 단상을 구조물로 구현하기 위해 배경의 옻칠을 생략했다.
전시 제목인 ‘멀리에서’ 시리즈는 보석의 장식성을 내려놓고 순수 옻칠만을 이용한 회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인 이 시리즈는 끈적거리는 성질을 가진 옻을 두텁게 쌓아 반복적으로 칠했는데도 유화처럼 부드러운 색감을 지닌다. 안개가 낀 듯한 채색 때문인지 마치 클로드 모네의 ‘인상 : 해돋이’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그는 “제주도에서 느꼈던 아련했던 기억 속 여러 풍경을 옻칠을 통한 모더니즘 회화로 풀어보고자 했다”며 “한국의 각 지방별 특색을 옻칠로 담아내는 프로젝트인 ‘아리랑 칸타빌레’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