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적 언어로 풀어낸 '피아니스트의 삶'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
“나는 이 삶을 사랑한다.”

음악으로 치면 3악장으로 구성된 곡에서 마지막 악장 ‘코다(종결부)’에 들어가기 직전쯤이다. 작가는 그야말로 다양한 형식과 변주로 풀어놓던 작품의 주제를 직설적으로 툭 내뱉는다. 그가 사랑하는 ‘이 삶’은 피아니스트의 삶, 좀 더 구체적으로는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삶, ‘솔리스트’의 삶이다.프랑스 피아니스트 알렉상드르 타로의 에세이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는 무대에 오르기 몇 초 전, 대기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또 다른 나’로 대상화해 바라보면서 시작한다. 짧지만 인상적인 독백을 ‘서주’처럼 마친 후 자신의 삶과 내면에 대한 단상(斷想)들을 ‘시작’ ‘욕망’ ‘불’이란 제목이 각각 붙은 세 단락으로 나눠 들려준다.

타로 앞에는 ‘지성파’란 수식어가 붙는다. 바로크부터 현대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독특한 해석으로 깊이 있고 정갈하게 연주하는 그의 음악세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그의 글들을 보면 지성파 못지않은 감성파다. 풍부한 시적 언어로 예술가의 내밀한 공간을 구석구석 보여준다. 글은 콘서트 전날 밤의 꿈에서 출발해 공연을 마친 뒤 호텔방에 돌아와 잠들었을 때 꾼 꿈에 대한 묘사로 끝난다. 그 사이에 어릴 때부터 겪은 불면증, 연주자로서는 치명적인 기억력 감퇴 등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피아노라는 악기, 피아니스트라는 직업, 리사이틀의 역사를 성찰하며 자기 삶의 근원과 본질을 탐색한다. 공연 중 들려오는 기침소리, 연주자 옆에서 악보를 넘겨주는 ‘페이지 터너’의 유형에 대한 분석에서는 재기가 번득인다.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세계 공연장 곳곳의 풍경 묘사에도 재치가 넘친다.

각각의 짧은 글은 치밀하게 이어지며 주제의식을 드러낸다. 그가 얼마나 콘서트 솔리스트의 삶을 진지하게 살아내며 사랑하는지가 묻어난다. ‘종결부’ 꿈속에 등장하는 하얀 고래는 그에게 속삭인다. “계속해.”10년의 연주 일정이 꽉 차 있다는 타로가 언제 한국을 찾을지 궁금해진다. 음악을, 공연장을, 관객을 사랑하는 그의 연주가 기다려진다. (백선희 옮김, 풍월당, 232쪽, 1만4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