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라인 워싱턴으로 달려갔지만…"美, 당장 중재는 안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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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對美 홍보전…日 보복 조치 부당성 설명한국이 일본 수출규제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한 ‘대미(對美) 외교전’에 들어갔다. 청와대는 10일(현지시간)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을 미국 워싱턴DC에 급파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한국시간으로 10일 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전화로 한·일 문제에 관해 의견을 나눴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도 이르면 다음주 워싱턴DC를 방문할 예정이다.
급파된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
백악관·행정부·의회 인사들 만나
일본은 미 정부 관계자들을 상대로 일본 측 입장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워싱턴을 둘러싼 한·일 외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일본은 이번 수출규제에 나서기 전에 이미 미국에 양해를 구했다는 얘기도 나온다.김현종 차장은 이날 워싱턴DC 인근 덜레스국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미 간 논의할 이슈가 많다”며 “백악관과 상·하원 인사들을 다양하게 만나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 미국에 중재를 요청할 것이란 보도가 있었다’는 질문엔 “그 이슈도 당연히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김 차장은 워싱턴DC에서 카운터파트인 찰스 쿠퍼먼 백악관 국가안보부 보좌관을 비롯해 미 행정부 관계자들과 의회 인사들을 만날 것으로 전해졌다.
김 차장은 이번 방미 기간 미 정부 인사들에게 일본 수출규제의 부당성과 한국 정부의 입장을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일본 측이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전략물자의 대북 반출 의혹까지 제기하는 상황에서 “근거 없는 주장”이란 의견도 미국 측에 분명히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김희상 외교부 양자경제외교국장도 이날 워싱턴DC를 방문했다. 11일 롤런드 드 마셀러스 미 국무부 국제금융개발국장, 마크 내퍼 한국·일본 담당 동아태 부차관보 등과 만날 예정이다. 그는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일본의 수출규제는 세계 교역질서를 교란하는 조치로, 그런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갈등과 관련해 미국의 역할을 주문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미국의 역할을 부탁한다기보다 일본의 조치 자체가 미국 산업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미국 쪽에 상세히 설명할 것”이라며 “미국이 어떤 조치를 할지는 미국이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반도체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반도체가 들어가는) 제품을 생산하는 데 차질이 생기고, 미국 기업도 연쇄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또 유명희 본부장은 경제부처, 자신은 국무부와 안보부처 위주로 활동하기로 역할을 분담했다고 설명했다.한국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일본도 미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만큼 이번 사태 해결에 미국이 ‘지렛대’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미국이 복잡한 한·일 갈등에 바로 발을 들여놓을지는 미지수다. 미 정치권에 밝은 한 소식통은 “한·일 갈등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으냐”며 “게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보다 미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내세운다”고 말했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미국에 직접적 피해가 없다면 당장 중재에 나설 이유가 적다는 것이다.
미국이 중재에 나서더라도 반드시 한국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리란 보장이 없다. 국력과 외교력에서 일본이 한국보다 한 수 위인 건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11~14일 일본에 들른 뒤 필리핀을 거쳐 16~18일 한국을 찾지만, 한국과 일본을 대하는 비중은 차이가 난다. 또 다른 소식통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5, 6월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 때도 골프 회동과 스모경기 관람 등을 통해 개인적 친분을 쌓았다”며 “그간의 만남에서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문제도 사전에 알리고 이해를 구했을지 모른다”고 했다. 이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쉽사리 한국을 지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