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여름 숲' 하림, 병아리 10마리가 재계 서열 26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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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주 김홍국 회장, 20대 초반부터 양계업자로 이름 날려닭고기는 오랜 시간 한국인의 영양을 책임져 온 대표적인 식재료다. 여름철 기력을 회복시켜 주는 메뉴로 삼계탕을 빼놓을 수 없고 야구장에는 '치맥(치킨+맥주)' 문화가 자리잡은 지 오래다. 언제 어디서든 배달이 가능한 환경 덕분에 전화 한 통이면 30분 이내로 치킨을 맛볼 수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계기로 프라이드 치킨 수요 폭증
글로벌 곡물기업 도약 위해 팬오션 인수 승부수
국내 닭고기 시장의 저변을 넓힌 기업으로는 단연 하림이 꼽힌다. '하림(夏林)'은 한자 그대로 '여름 숲'이라는 뜻이다. 하림을 창업한 김홍국 회장은 무더운 여름날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에게 숲의 나무 그늘처럼 땀을 식혀주고 위로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담아 회사 이름을 지었다. 그의 뜻대로 하림은 초복, 중복, 말복 때마다 닭고기로 소비자의 영양을 책임지고 있다.1957년생 닭띠인 김 회장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외할머니로부터 받은 병아리 10마리가 자신의 인생을 바꿨다고 이야기한다. 197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고 양계사업에 전념했다. 김 회장은 4000만원의 자본금으로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 하림의 모체인 황등농장을 세우고 종계 5000마리를 비롯해 돼지를 함께 키웠다.
김 회장은 사료를 대량으로 구매하기 위해 픽업 트럭을 구입하는 등 이십대 초반에 익산에서 제일 큰 양계업자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곧이어 시련이 닥쳤다. 1982년 전국을 강타한 전염병때문에 닭 값이 폭락한 것이다.
당시 그는 연이율 60% 대의 고리사채까지 써가며 사업을 의욕적으로 확장했던 터라 더욱 타격이 컸다. 하지만 계속 패배자처럼 있을 수만은 없었다. 빚을 청산하기 위해 익산의 모 식품회사에 입사해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경영관련 논문과 서적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김 회장은 그 시절 우연히 미국사료곡물협회의 박영인 박사의 강의를 들으면 통합경영이라는 이론을 알게 됐다. 강연의 요지는 농·축산업이 살기 위해서 재배나 사육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가공과 유통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사육과 가공을 같이 하면 닭 값은 떨어져도 최종 제품 가격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1986년 3월 하림의 전신인 '코리아데리카후드'를 창업하고 계열화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사육과 가공, 수출까지 염두하고 설립한 회사였다. 충남 연무대에 농장을 만들고 이곳에서 키운 닭을 임도계해 시장에 공급했다. 일부 부분육은 일본으로 수출도 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삼장통합'이라는 경영 원칙을 세웠다. 이는 '농장', '공장', '시장'을 기반으로 사육·가공·유통을 계열화하는 것을 말한다. 즉 농장에서 닭을 사육하고, 공장에서는 생산과 가공을 담당하며, 시장에서는 소비자에게 차별화된 식품을 유통시킨다는 경영 전략이었던 것이다.이후 1988년 8월 정부로부터 육계계열화업체로 지정받으면서 계열화 사업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타이밍도 기가 막혔다.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프라이드치킨과 양념치킨 체인점이 인기를 끌면서 닭고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김 회장은 1990년 10월 11일 전북 익산 망성지역에 현대식 공장을 건설하면서 본사를 이곳으로 옮기고 이때 회사명을 '하림'으로 명명했다. 이후 1991년~1997년까지 동양 최대 규모의 도계공장과 사료공장을 준공하고 육가공공장을 건립하면서 오늘날 하림의 기본 틀을 갖췄다. 1997년 코스닥에도 상장하며 외형적 성장의 결실을 맺었고 1995년 국내 농축산물 중 최초로 KS마크 인증을 취득한 데 이어 1998년에 ISO9001을 획득하는 등 내실도 기했다.
2014년 하림은 국내 자산 4조7000억원에 국내외로 거느린 법인수가 85개에 달했다. 임직원은 무려 1만1000여명에 사업영역도 축산, 사료, 유통판매, 도축가공, 해외사업, 식품제조로 커졌다. 연간 도계되는 닭과 돼지는 각각 1억7770만 마리, 104만3000마리, 연간 사료 생산량은 333만8000톤. 각 부문 모두 국내 1위. 이것이 하림그룹의 현주소였다.김 회장은 만족하지 않고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던졌다. 2014년 글로벌 곡물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해상운송업체인 팬오션의 인수전에 뛰어든 것. 입찰가격은 1조80억원이었다. 업계에서는 하림의 행보를 두고 과도한 모험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금 동원력을 의심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 회장은 자신이 있었다. 축산 전문기업으로서 높은 시장 장악력과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지니고 있었고 팬오션을 인수한다면 주요사업인 축산, 식품가공, 사료 등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확신했다. 곡물사업의 핵심이 선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곡물의 중요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하림그룹 전체 매출의 35%가 사료에서 나왔고, 하림이 연간 수입하는 곡물만 300만톤에 육박했다. 국내 항구에 도착하는 곡물가격의 20% 정도가 해상운송 비용을 차지할 만큼 곡물은 선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때문에 벌크선 인프라만 갖추면 사료 운송비용을 절감하고 유통망도 안정될 것으로 판단했다. 그때 곡물 팬오션이 매물로 나왔다. 김 회장으로서는 인수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팬오션까지 품에 안은 하림은 이제 해외 진출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미국,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 해외 곳곳에 진출해 있으며 전체 매출의 15%였던 해외 매출 비중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0마리의 병아리에서 출발한 하림은 어느덧 대기업집단으로 성장했다.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는 2018년 말 기준 자산 5조원 이상을 보유한 공시대상기업집단을 지정해 발표하면서 하림을 자산 총액 11조 9000억원으로 재계 서열 26위에 올렸다.하림은 하반기에 스마트 팩토리 설립 등으로 지속적인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또한 하림 삼계탕이 미국시장 수출량이 증가함에 따라 기존 제품에 이어 '가슴살 삼계탕' 수출도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 FSIS(미국 식품안전검사국) 심사를 진행 중이다. 빠르면 오는 11월 중순에 첫 선적이 이뤄질 전망이다.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