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자신 안에 있는데…외부에서 찾으며 불안해하는 인간들

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59) 소유욕(所有慾)
‘데이아네이라를 납치하는 켄타우로스 네수스’, 루이 장 프랑수아 라그레네(1724~1805) 작, 유화, 1755년, 157×185㎝, 루브르박물관.
행복(幸福)이란 마음의 상태다. 외부 자극이나 환경에 의해 나의 ‘행복’이 영향을 받는다면 나는 불행하다. 불행이란 자신의 행복을 유지할 수 없는 상태다. 현대인에게 하루는 오감을 자극하고 유혹하는 광고들로 넘쳐난다. 저마다 ‘내가 불행하다’ 생각하는 이유는 광고하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지 않아서다. 만일 행복이, 내가 조절할 수 없고 내가 개선할 수 없는 외부에 있다면, 나는 영원히 불안과 초조 속에서 헤매며 살 것이다. 나는 공중에 떠 있는 풍선과 같아 바람이 불지 않고 고요하면 잠시 행복하다고 느끼고, 비바람이 치면 불행하다고 느낄 것이다. 비바람은 불기 마련이고 천둥·번개는 치기 마련이다. 행복은 비바람이 도달할 수 없는 내 마음속에 고요히 존재한다.

행복인생이란 항해는 크고 작은 사건의 연속이다. 이 연속적인 사건들에 일희일비하는 경솔한 마음과 반응이 불행의 시작이다. 행복은 내가 조절할 수 없는 것에 기대지 않는다. 운이 좋은 일들은 자만하지 말고 더 겸손하게 정진하라는 충고다. 불운한 일들은 거꾸로 앞으로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란 희망의 전조다. 짧은 인생 동안 반드시 성취하고 싶은 일을 발견하고 그것에 온전히 몰입하는 것이 곧 행복이다.

행복은 마치 마당에 핀 장미와 같다. 누군가 장미를 심어 놓았고, 그 장미가 잘 피도록 관리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상상한다. 그러나 장미에게 “왜 너는 꽃을 피웠느냐?”고 묻는다면 장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 질문은 어리석습니다. 그냥 핀 겁니다.” 과학과 기술은 그 원인과 결과를 정확하게 설명하려 하지만, 장미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다.

우리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의미심장한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이 사건은 우리의 정신적인 피폐뿐 아니라 영적인 고갈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은 여인이 전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의 사건이다. 그는 살인에 관련된 모든 흔적을 지우기 위해 자신의 전공인 화학을 동원했다고 한다. 그에게 행복은 환경이 가져다주는 상품이다. 자신의 행복을 방해하는 존재는 제거 대상이다. 이런 마음가짐은 오늘날 대한민국이 지닌 야만적인 정신 수준이다.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리다는 극단적인 생각이며, 틀린 상대방은 제거할 수 있다는 폭력을 신봉한다. 우리는 자신을 가만히 돌아보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보는 숙고(熟考)를 모른다.시기(猜忌)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고 해야 할 일들을 ‘숙고’를 통해 발견하는 자는 언제나 부자(富者)다. 미래에 이룰 자신의 모습을 이미 그리고 있어서다. 반면 자신을 숙고한 적이 없고 행복을 자신이 아니라 외부에서 찾아 경쟁에 몰두하는 사람은 항상 가난하다. 그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소유에 만족하지 않기 때문에 가난하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을 독립적이며 고유한 존재로 보지 않고 타인과 비교하며 정체성을 만들어간다. 그는 숫자를 이용해 자신과 타인의 가치를 비교한다. 본인의 그 숫자가 적으면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그런 상대에 대한 첫 반응은 ‘부러움’이다. 그의 시선은 자신의 심연에 존재하는 행복을 응시하는 게 아니라 타인에게 고정돼 있다.

부러움은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지 못할 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헛된 바람이다. 인간의 DNA가 모두 다르듯이, 개인은 저마다 소질이 다르다. 교육은 무엇을 암기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사적인 소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것을 발견해 발휘하라는 격려다. 시간이 흐르면 부러움이 시기(猜忌)로 변한다. 자신의 고유함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개 하는 행위가 시기다. 어떤 대상에 대해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고 시기의 대상을 사냥하는 대중과 연합한다. 시기를 품은 개인이나 공동체는 자신이 내뿜은 나쁜 기운으로 스스로 자멸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 《트라키스 여인들》은 인간이 지닌 가장 기본적 감정인 소유욕, 시기, 그리고 그것이 초래하는 비극을 아테네 시민들에게 보여준다.《트라키스 여인들》

《트라키스 여인들》은 소포클레스 비극 중 가장 이해하기 힘들며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이다. 신화적 배경이 복잡하고, 그 주제가 현대인들이 이해하기에 난해하다. 비극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부분은 ‘데이아네이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다. 데이아네이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고 영웅 헤라클레스의 두 번째 부인이다. 데이아네이라란 이름은 의미심장하다. 그리스어로 ‘살해하다’란 의미를 지닌 ‘데이오오(deioo)’와 ‘남편(남자)’을 뜻하는 ‘아네르(aner)’의 합성어다. ‘남편을 살해하는 여인’이란 얘기다. 이름을 통해 이 극에서 일어날 가정 불화와 비극적 사건을 상상할 수 있다. 두 번째 부분은 헤라클레스가 데이아네이라가 마련한 옷을 입자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고 데이아네이라가 자살하는 내용이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 시민들은 제우스의 아들인 헤라클레스에 관한 전설을 잘 알고 있었다. 제우스는 일생 동안 그의 정직을 의심하는 아내 헤라에 의해 고통받았다. 헤라클레스는 테베의 공주 메가라를 취해 세 아들을 낳았다. 헤라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헤라클레스를 미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헤라클레스는 메가라와 세 아들을 활로 쏘아 죽인다. 처자식을 죽인 헤라클레스는 델포이로 가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한 신탁을 받는다. 신탁은 그에게 명령한다. 헤라클레스는 이제 미케네로 가서 에우리스테우스 왕의 노예가 돼 12가지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 이것이 ‘헤라클레스의 12과업’이다. 그 과업 중 하나를 마치기 위해 헤라클레스는 저승세계로 내려가 지옥을 지키는 삼두견인 케르베로스를 지상으로 데려온다. 헤라클레스는 그곳에서 영웅 멜리아그로스의 혼백을 만났다. 멜리아그로스는 자신이 죽고 나면 누이동생 데이아네이라와 결혼해 달라고 헤라클레스에게 청한다.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가 결혼하게 된 경위다.《트라키스 여인들》에는 이런 신화적인 내용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 뿐 아니라 그 주제도 난해하다. 헤라클레스와 데이아네이라란 인물을 중심으로 얽힌 섹스, 유혈이 낭자한 폭력, 시기, 질투가 비극에 점철돼 있다. 이 비극이 거의 상연되지 않는 이유는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 때문이다. 사랑스럽고 이성적인 여인인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을 소유하기 위해 사랑의 미약(성욕을 일으키는 약)을 찾았다. 그러나 그 미약은 그녀를 겁탈하려는 켄타우로스 괴물을 죽인 헤라클레스 화살의 독이었다. 결국 헤라클레스는 이 독 때문에 죽는다. 이 신화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가.

데이아네이라

극은 트라키스에 있는 헤라클레스 궁 앞에서 시작한다. 트라키스는 델포이 북쪽에 있는 도시다. 무대 위로 헤라클레스 부인 데이아네이라와 유모가 등장한다. 데이아네이라는 비탄의 노래로 극을 시작한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그 누구도 죽기 전에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있는 동안 제 삶이 불운하고 괴로울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1~5행) 그녀는 멧돼지 사냥으로 유명한 멜리아그로스의 여동생이다. 강물 신(神)인 아켈로오스가 세 가지 괴물의 모습으로 변신해 그에게 청혼했다. 그는 아켈로오스와 결혼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며 기도하던 중, 헤라클레스가 아켈로오스를 물리치고 그와 결혼했다.

데이아네이라는 헤라클레스와 사이에 아들 힐로스를 낳았지만, 헤라클레스가 아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헤라클레스는 힐로스 보기를 마치 농부가 멀리 떨어진 밭을 파종 때 한 번, 수확 때 한 번 보듯 합니다.”(32~33행) 궁술의 명인으로 알려진 테살리아 지방 오이칼리아의 왕 에우리토스는 자신과 궁술시합에서 승리하는 자에게 딸을 주겠다고 약속한다. 헤라클레스는 이 궁술시합에서 이겼으나, 에우리토스는 약속한 딸을 주지 않았다. 헤라클레스는 후에 에우리토스와 그의 아들 이피토스를 살해한다. 헤라클레스는 이 살해사건으로 15개월 방랑생활을 해야 했다. 이 사건으로 데이아네이라와 힐로스는 트라키스라는 땅으로 추방당한다. 트라키스에서 남편을 기다리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는 데이아네이라는 남편이 돌아올 날만 기다린다. 남편이 자신을 더 이상 떠나지 못하도록 묘책을 간구하고 있다. 그녀는 남편을 온전히 소유하고 싶었다.

배철현 < 작가 ·고전문헌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