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서 수출규제 매듭 풀지 못한 한일…대응 수위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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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달 백색 국가 제외 시행 방침…정부, WTO 제소 외 카드 검토
자칫 '치킨게임' 우려 속 미국의 '중재자 역할' 주목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 이후 성사된 첫 만남에서 한일 양측은 6시간 가까이 '마라톤 회의'를 했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를 풀 합의점에는 끝내 도달하지 못했다.일본이 다음 달 중 한국의 '화이트 국가(백색 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상황에서 대응 수위를 놓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2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일본 경제산업성 관계자들과 한일 양자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는 일본 정부가 지난 4일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핵심소재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를 단행한 이후 처음 열리는 자리여서 양국의 국민적 관심이 높았다.하지만 일본 정부가 실무진(과장)급으로 격을 낮추고 협의 인원을 원래 5명에서 2명으로 줄인 데다가 회의의 성격도 '협의'가 아닌 '설명회'로 규정하면서 시작 전부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실제로 회의장은 화이트보드 1개와 책상, 의자만 덩그러니 놓인 '창고' 같은 곳이었고, 한국 측 참석자에게 악수를 권하지도 명함을 내밀지도 않는 등 홀대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다.오후 2시에 시작된 회의가 종료 예정 시각이었던 오후 4시를 훌쩍 넘겨 대화에 진전을 이룬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으나 일본의 입장을 바꾸진 못했다.산업부는 회의가 끝난 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 브리핑에서 "이번 조치의 배경과 궁금했던 사안, 일본이 명쾌히 제시하지 않은 사항을 충분히 질문하면서 문제를 제기할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문제를 제기했다"면서도 "양측 입장 차이는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한국은 다음 달 중순 이후 이행될 수 있는 백색 국가 제외 조치까지 대비해야 한다.
일본은 우방국을 백색 국가로 제정해 완화된 수출규제를 적용한다.현재 일본의 백색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27개국이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1일 반도체 3개 품목 수출규제와 함께 한국의 백색 국가 제외 방침을 고시했다.
고시는 오는 24일까지 의견수렴을 거쳐 각의(국무회의)에서 의결·공포하면 21일 후 발효된다.
일본이 끝까지 입장을 고수한다면 다음달 20일을 전후해 발효될 수 있다.
백색 국가에서 제외되면 거의 모든 산업에서 수출 절차가 대폭 까다로워진다.
한국 정부로서는 일본의 공세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수준으로 대응할지가 고민되는 상황이다.
한국을 상대로 집요하게 진행되는 일본의 보복성 조치를 당하고만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한국 정부의 대응 방안을 묻는 말에 "한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미 밝힌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외에 '상응 조치'를 위한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
직접적인 상응 조치로는 주요 품목의 대일 수출을 제한하거나 일본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일본처럼 한국의 백색 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방안은 현재로선 검토하고 있진 않다.
한국의 백색 국가로는 일본을 비롯해 29개국이 있다.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일본 측이 수출규제 조치 근거로 '한국 정부의 대북제재 위반'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데 대해 실제 위반사례가 있는지 한일 양국이 동시에 국제기구 조사를 받자고 제안했다.
김유근 NSC 사무처장은 "우리 정부 잘못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대한 사과는 물론 보복적 성격의 수출규제 조치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다만, 일본은 이날 만남에서 수출규제의 근거가 북한 등 제3국 반출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양국 간 갈등이 자칫하면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치킨게임은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기업들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일단 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고순도 불화수소 공급처를 러시아 등으로 다변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러시아 측에서 주한러시아대사관을 통해 러시아산 에칭가스 공급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도 대만 등 일본을 대체할 수입선을 확보하기 위해 뛰고 있다.
그동안 한일갈등에 관망해온 미국 측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미국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미국은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방한과 맞물려 한미일 3국의 고위급 협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틸웰 차관보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이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양국이 긍정적으로 협력 가능한 분야에 눈을 돌려 장애를 극복하도록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한일관계가 더 나빠지는 것은 일본 경제에도 상당히 부담이 가는 일이다.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을 제한해 한국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면 한국산 반도체를 쓰는 일본 업체에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의 3위 무역 흑자국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수교 이후 53년간 한 번도 한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 국가 명단에서 제외한다면 수출액 급감을 감수해야 한다.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문병기 수석연구원은 "일본에서도 반도체 소재 주요 수출국인 한국을 제재하면 자국 기업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며 "더구나 양국 산업이 글로벌 가치사슬로 얽혀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조치는 한일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자칫 '치킨게임' 우려 속 미국의 '중재자 역할' 주목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 이후 성사된 첫 만남에서 한일 양측은 6시간 가까이 '마라톤 회의'를 했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를 풀 합의점에는 끝내 도달하지 못했다.일본이 다음 달 중 한국의 '화이트 국가(백색 국가)'에서 제외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한 상황에서 대응 수위를 놓고 정부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2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일본 경제산업성 관계자들과 한일 양자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는 일본 정부가 지난 4일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핵심소재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를 단행한 이후 처음 열리는 자리여서 양국의 국민적 관심이 높았다.하지만 일본 정부가 실무진(과장)급으로 격을 낮추고 협의 인원을 원래 5명에서 2명으로 줄인 데다가 회의의 성격도 '협의'가 아닌 '설명회'로 규정하면서 시작 전부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했다.
실제로 회의장은 화이트보드 1개와 책상, 의자만 덩그러니 놓인 '창고' 같은 곳이었고, 한국 측 참석자에게 악수를 권하지도 명함을 내밀지도 않는 등 홀대하는 듯한 모습이 포착됐다.오후 2시에 시작된 회의가 종료 예정 시각이었던 오후 4시를 훌쩍 넘겨 대화에 진전을 이룬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이 생기기도 했으나 일본의 입장을 바꾸진 못했다.산업부는 회의가 끝난 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 브리핑에서 "이번 조치의 배경과 궁금했던 사안, 일본이 명쾌히 제시하지 않은 사항을 충분히 질문하면서 문제를 제기할 부분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문제를 제기했다"면서도 "양측 입장 차이는 여전히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음에 따라 한국은 다음 달 중순 이후 이행될 수 있는 백색 국가 제외 조치까지 대비해야 한다.
일본은 우방국을 백색 국가로 제정해 완화된 수출규제를 적용한다.현재 일본의 백색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27개국이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1일 반도체 3개 품목 수출규제와 함께 한국의 백색 국가 제외 방침을 고시했다.
고시는 오는 24일까지 의견수렴을 거쳐 각의(국무회의)에서 의결·공포하면 21일 후 발효된다.
일본이 끝까지 입장을 고수한다면 다음달 20일을 전후해 발효될 수 있다.
백색 국가에서 제외되면 거의 모든 산업에서 수출 절차가 대폭 까다로워진다.
한국 정부로서는 일본의 공세를 어떤 방식으로, 어느 수준으로 대응할지가 고민되는 상황이다.
한국을 상대로 집요하게 진행되는 일본의 보복성 조치를 당하고만 있을 순 없기 때문이다.
산업부는 한국 정부의 대응 방안을 묻는 말에 "한국 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미 밝힌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외에 '상응 조치'를 위한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
직접적인 상응 조치로는 주요 품목의 대일 수출을 제한하거나 일본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일본처럼 한국의 백색 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방안은 현재로선 검토하고 있진 않다.
한국의 백색 국가로는 일본을 비롯해 29개국이 있다.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일본 측이 수출규제 조치 근거로 '한국 정부의 대북제재 위반'을 시사하는 발언을 한 데 대해 실제 위반사례가 있는지 한일 양국이 동시에 국제기구 조사를 받자고 제안했다.
김유근 NSC 사무처장은 "우리 정부 잘못이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에 대한 사과는 물론 보복적 성격의 수출규제 조치도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다만, 일본은 이날 만남에서 수출규제의 근거가 북한 등 제3국 반출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했다.
양국 간 갈등이 자칫하면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치킨게임은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을 경우 양쪽 모두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기업들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면서도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일단 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고순도 불화수소 공급처를 러시아 등으로 다변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러시아 측에서 주한러시아대사관을 통해 러시아산 에칭가스 공급을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도 대만 등 일본을 대체할 수입선을 확보하기 위해 뛰고 있다.
그동안 한일갈등에 관망해온 미국 측이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는 듯한 태도를 취하면서 미국의 역할에도 관심이 쏠린다.
미국은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의 방한과 맞물려 한미일 3국의 고위급 협의를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틸웰 차관보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이 긴장 관계에 있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양국이 긍정적으로 협력 가능한 분야에 눈을 돌려 장애를 극복하도록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한일관계가 더 나빠지는 것은 일본 경제에도 상당히 부담이 가는 일이다.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을 제한해 한국 반도체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면 한국산 반도체를 쓰는 일본 업체에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의 3위 무역 흑자국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수교 이후 53년간 한 번도 한국과의 무역에서 적자를 낸 적이 없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 국가 명단에서 제외한다면 수출액 급감을 감수해야 한다.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문병기 수석연구원은 "일본에서도 반도체 소재 주요 수출국인 한국을 제재하면 자국 기업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며 "더구나 양국 산업이 글로벌 가치사슬로 얽혀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조치는 한일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