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자사고 대신 교육청을 폐지할 수 없나

교육청 없는 영국은 투명한 학교 평가
한국 교육청의 자사고 평가는 깜깜이

정인설 런던 특파원
제주교육청은 지난 1월 영국의 지방 교육청과 자매결연을 맺으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영국에는 ‘교육청’이라는 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대안으로 찾은 곳이 런던 킹스턴교육지원청이다.

이 지원청은 얼핏 우리의 교육청과 비슷한 정부 기관처럼 보이지만, 이곳은 공무원과 민간 전문가가 모인 반관반민 기관이다. ‘아동지원청(Achieving for Children)’이라고 해석해야 본래 의미에 더 가까울 듯하다. 해당 홈페이지에선 ‘어린이를 보호하고 지원하는 비영리 사회적 기업(not-for-profit social enterprise)’이라고 정의하고 있다.이 기관은 오래전부터 있었던 게 아니다. 2014년에 생겼다. 킹스턴구와 리치먼드구, 윈저구와 메이든헤드구가 공동으로 설립했다. 런던 내 다른 자치구(borough)에는 아직 이런 기관이 없다.

영국에 지역별 교육 관청이 없다면 한국의 교육청 역할은 어디서 할까. 한국으로 치면 시청이나 구청에 해당하는 카운슬(council)에서 한다. 구체적으로 카운슬의 교육 담당 부서에서 한국의 교육청 역할을 한다. 이 부서를 두고 일부 한국 언론에선 ‘영국 지방교육청’이라고 오역하곤 한다. 정확히 말하면 영국의 지방교육청(local education authority)은 2010년 완전히 없어졌다. 정부 개입을 줄이고 학교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살려주려는 목적이다.

이 취지를 살리기 위해 카운슬은 학교를 관리 감독만 할 뿐, 학교 평가 업무는 하지 않는다. 그 일은 교육부 산하 교육표준청(Ofsted: The Office for Standards in Education)이라는 독립기관이 한다. 카운슬마다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보다 통일된 기준으로 평가하는 게 맞다고 보기 때문이다.일관된 기준이 있는 만큼 학교 존속 여부까지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교육표준청은 학생의 성적과 행동, 교사의 능력, 학교 경영 평가 등을 고려해 1등급(outstanding)부터 4등급(inadequate)까지 학교 등급만 매긴다. 한국의 자율형 사립고와 비슷한 영국의 아카데미가 계속 4등급을 받으면 학부모나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해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된다는 판단에서다.

한국의 자율형 사립고 재지정 평가처럼 깜깜이도 아니다. 평균 5년 주기로 시행하는 영국 학교별 평가 때마다 매번 보고서를 내고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한다. 누가 왜 이런 평가를 했는지 소상히 알 수 있다. 평가자 명단에 대해 함구하고 총점과 항목별 점수 외에 어떤 내용도 알 수 없는 한국의 자율형 사립고 평가와 다르다.

이번에 제주교육청은 과정 중심인 영국의 학생 평가 제도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킹스턴교육지원청과 자매결연을 했다. 한국처럼 시험으로 학습 성과만 평가하는 게 아니라 교육 과정에서 생긴 학생의 변화를 평가에 반영하는 영국 교육을 배우려 한다는 얘기다.하는 김에 학생 평가뿐 아니라 과정과 투명성을 중시하는 영국의 학교 평가 시스템도 들여다보는 게 어떨까. 나아가 그 내용이 최근 자의적 자율형 사립고 평가로 논란의 중심에 선 서울·경기·전북교육청에도 전해졌으면 한다. 그래야 교육청도 없는데 학교 평가에서 뒷말이 적게 나오는 영국을 제대로 벤치마킹할 수 있을 것 같다.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