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D가 개발한 발사체, 항우硏은 또 연구…'R&D 불통'에 혈세 줄줄

구멍뚫린 재정
(6) 20조 R&D 예산은 '눈먼 돈'

20조5328억원…올해 R&D 자금
R&D 예산 곳곳 중복투자
핵심소재 육성은 '나몰라라'
드론(무인항공기)은 각 부처가 경쟁적으로 연구개발(R&D)을 벌이고 있는 분야다. 관할 부처가 다르다는 이유로 예산을 중복 집행하는 사례가 많다.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대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전시된 대형 드론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흔히 ‘깜깜이 예산’으로 불린다. 과학기술 분야가 워낙 다양한 데다 내용도 복잡하다 보니 꼭 필요한 분야에 나랏돈이 투입됐는지, 돈을 준 취지에 맞게 쓰고 있는지를 검증하기 힘들어서다. 저명한 과학자도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면 입을 닫는 상황에서 공무원들이 수많은 R&D 과제의 성공 가능성과 시장성을 제대로 평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시장성 없는 R&D 프로젝트에 ‘목돈’이 배정되고, 예고된 실패에 ‘헛돈’을 쓰는 사례가 반복되는 이유다. 과학기술계 전문가들은 “한정된 R&D 예산을 검증하기 어려운 수천 개 프로젝트에 나눠주는 데서 모든 비효율이 시작된다”며 “1990년대 CDMA(부호분할다중접속)와 광케이블 R&D에 올인했던 것처럼 한국을 먹여살릴 핵심사업에 자금을 몰아줘야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고 검증도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중구난방’ 국가 R&D 시스템

올해 국가 R&D 예산은 20조5328억원이다. 사상 처음 20조원을 돌파했다. 이 중 절반가량(2017년 기준 45.9%)은 정부출연연구소와 국공립 연구소 몫이다.

매년 10조원에 육박하는 돈을 쓰지만 성적표는 초라하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기술료 수입과 기업 생산성 향상 기여 등을 포함한 사업화 성공률은 20%대에 그쳤다. 영국(70.7%) 미국(69.3%) 일본(54.1%) 등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권혁동 서울과학기술대 글로벌융합산업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R&D 예산을 꾸준히 늘리면서 웬만한 출연연구소에는 연구원 한 명당 5억원 넘는 자금이 배정되고 있다”며 “조직 역량에 비해 너무 많은 자금이 몰리면서 ‘효용 효율점’을 넘어선 상태”라고 지적했다.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제 몫을 못하는 배경에는 담당 부처 간 ‘칸막이 행정’이 자리잡고 있다. 국가 R&D의 양대 축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기초 연구)와 산업통상자원부(응용 연구)가 따로 놀다 보니 과기정통부 산하기관의 성과가 산업부 산하기관으로 제대로 이전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다른 부처가 합세하면 ‘불통 비용’은 더 커진다. 국방부 산하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대표적이다. 과거 ADD가 군사 기밀이란 이유로 발사체 기술을 공유하지 않은 탓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발사체 기술연구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드론(무인항공기)도 마찬가지다. 산업부 과기정통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등 여러 부처가 동시에 뛰어들면서 똑같은 연구를 각자 했다. 예산 낭비 지적이 일자 정부는 “해당 부처들이 모여 공동 연구하겠다”고 했지만, 과학기술계는 “수십 년간 쌓인 칸막이가 쉽게 사라지겠느냐”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정작 필요한 곳엔 안 써

국가 R&D 예산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정작 필요한 분야에는 자금이 수혈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본이 최근 ‘경제보복’ 대상으로 삼은 3개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가 대표적인 예다. 반도체 기판을 만들 때 쓰는 포토레지스트(감광액)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등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에 대한 정부 R&D 지원은 2017년 3월 이후 중단됐다. 반도체 세정에 쓰이는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는 정부 R&D가 한 번도 투입된 적이 없다.

정부는 일본이 이들 품목을 수출규제 대상으로 삼자 “국산화하겠다”며 국가 R&D 리스트에 다시 넣었다. ‘돈 잘 버는 대기업들이 스스로 연구개발하면 되는 만큼 국가 예산을 투입할 필요가 없다’며 전액 삭감해놓고선 문제가 터지자 2년 만에 뒤집은 것이다. “전형적인 뒷북행정”(장석춘 자유한국당 의원)이란 비판은 이래서 나온다.‘관제 R&D 프로젝트’가 국가 R&D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왜곡한다는 비판도 있다. 공공 연구기관은 ‘연구과제중심제도(PBS)’에 따라 인건비 일부를 정부 과제를 수행하면서 충당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정권의 입맛에 따라 연구주제가 결정되는 사례가 많다.

실제 PBS 수탁과제는 특정 분야에 편중돼 있다. ‘녹색성장’ ‘창조경제’ ‘혁신성장’ 등 정권의 슬로건과 걸맞은 과제들이 내려오는 게 일반적이다.

송형석/구은서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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