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명저] "고독 극복하려면 자율형 인간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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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리스먼 《고독한 군중》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명실상부한 유일 초강대국 반열에 올랐다. 전쟁은 미국의 경제적 번영에 크게 기여했다. 1950년대 미국은 풍요로운 사회로 불렸다. 1930년대 시작된 뉴딜 정책과 2차 대전을 거치면서 미국 사회에서는 소득 분배의 평준화가 일어났고, 중산층은 사회 중심세력으로 급속히 자리잡았다. 소득 격차가 줄어들면서 소비 유형은 비슷해졌다. 미국 사회는 획일화·동질화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개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집단적인 기준을 따르는 ‘순응주의’가 일반적 현상으로 나타났다.
미국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1909~2002)의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은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나왔다. 그는 이 책에서 산업화된 대중사회의 구조적 메커니즘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의 사회의식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날카롭게 분석했다. 처음엔 1940년대 후반 미국인들의 정치적 무관심의 근원에 대한 연구로 출발했다. 그러나 많은 초안을 거치면서 미국인의 삶에 대한 야심찬 연구로 발전했다. 학술서임에도 1950년 초판이 나왔을 때 7만 부가 매진됐고, 1954년 보급판은 50만 부가 팔렸다. 미국 학계에선 찬사와 비판이 함께 쏟아졌다. 일반 독자층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시대를 대표하는 저서가 됐다.
타인지향형으로 사회적 성격 변화
‘고독’과 ‘군중’이라는 모순어법은 기업화, 관료화, 단일화돼가는 미국 사회의 문제점을 포착했고, 현대 산업사회에서 개인의 소외를 나타내는 대표적 문구로 자리잡았다.리스먼은 사회의 변화와 그 사회 구성원들의 생활양식 변화를 ‘사회적 성격’이라는 개념을 통해 파헤쳤다. 사회적 성격은 ‘주요 사회집단 사이의 공통된 성격’으로 사회집단들의 경험에서 나온 산물이다. 온갖 계급, 집단, 지역, 국가의 성격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전통지향형’ ‘내부지향형’ ‘타인지향형’의 세 가지 사회적 성격이 등장했다고 주장했다. 전통지향형은 사회 구성원이 전통과 과거를 추종하는 데서 주요 행위기준을 찾는 봉건적 시대의 사회적 성격이다. 내부지향형은 가족 안에서 학습된 도덕과 가치관이 행위기준이 된 유형으로, 19세기 공업시대 주류를 형성했다. 타인지향형은 또래집단 등이 갖는 가치체계로부터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인간형으로, 당시 미국 대도시 상류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현상을 가리킨다.
리스먼은 당시 미국 사회가 물질적 풍요와 관용적인 분위기에서 타인지향형 인간이 점점 다수를 이뤄가고 있다고 봤다. 이는 생산의 시대에서 소비의 시대로, 인쇄문화에서 영상문화로 변화한 것과도 상응한다. 부모의 권위는 쇠퇴하고, 또래집단과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은 확대됐다. 리스먼은 “매스미디어의 영향으로 타인지향적 아이는 내부지향적 시대의 어른보다 더 세련된 방식으로 인간관계의 속사정을 예민하게 파악한다”고 했다.현대사회는 매우 개인주의적이고 자유로운 경쟁사회라는 게 당시의 인식이었다. 하지만 대중사회가 본격화되면서 개성보다 대인관계가 더 중요해졌다는 게 리스먼의 진단이다. 타인지향형 사회를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적 욕구가 커진다. 타인의 관심사를 포착하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공동체나 조직으로부터 격리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번민한다. 리스먼은 자아상실의 수렁에 빠진 이들로 구성된 타인지향형 사회는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하고, 민주체제에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리스먼은 세 가지 사회적 성격의 전형적인 모습은 ‘적응형’에 속한다고 봤다. 적응형 인간은 거의 완전하게 그들의 사회 및 사회계급을 반영한다. 이에 비해 ‘자율형’은 사회에 순응할 능력이 있으면서도 순응 여부에 대한 선택의 자유를 갖는다.
또래집단서 벗어나 개인능력 키워야리스먼은 타인지향적인 사회적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율형 인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래집단에서 자유로워짐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자율성에 이르는 길을 개척해나갈 수 있다고 했다. 인간은 제각기 다른 존재로서 창조됐는데, 서로 똑같아지기 위해서 사회적 자유와 개인적 자율성을 상실했다는 지적이다. 리스먼은 “개개의 인간은 저마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며 “자신의 생각이나 생활 자체가 얼마나 흥미로운지 알아차리게 된다면 더 이상 군중 속의 고독을 동료 집단에 의지해 애써 누그러뜨리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태가 됐을 때 인간은 자신의 실제 감정과 포부 등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고독한 군중》은 1950년대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 창을 제공했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회적 특성은 지금은 상당 부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발달로 타인이 개인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 지금 리스먼의 책은 출간 당시보다 더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사회적 성격, 조직화된 시대 인간 자율성의 의미 등 이 책이 제기하는 질문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유의미하다.
양준영 논설위원 tetri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