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최선을 다하는 법

음악이 함께 책임지는 공동작업이듯
삶에서도 주변을 이해하는 능력 필요

이경재 < 서울시오페라단 단장 >
꽤 오래전 이야기다. 미국 유학시절, 학교 내 오페라 극장의 무대감독을 맡은 적이 있다. 모든 극장은 공연을 위해 무대감독을 두는데 그 역할은 대단히 중요하다. 다른 장르의 무대감독도 그렇지만, 오페라 무대감독은 더 많은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를테면 오페라 악보를 볼 줄 알아야 하고, 그 아래 쓰여 있는 이탈리아어나 독일어 가사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조명 지식은 물론 무대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솔하는 리더십도 필요하다. 무대 세트가 끊임없이 전환되는 가운데 사고 위험이 크기 때문에 무대감독은 무대 전체 상황을 이해하고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오페라 공연을 진행하기 위해 무대감독은 자신의 악보노트를 준비한다. 모든 상황을 기억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오페라 연습 전반에 참여해 진행되는 내용을 노트에 기록해둔다. 두 달여간의 연습을 통해 배우들의 동선과 등·퇴장 지시, 조명 큐(cue), 무대세트를 바꾸는 전환 큐, 소품의 배치와 등·퇴장을 알리는 큐, 효과·음향 큐 등 공연하는 데 필요한 모든 사항을 악보를 따라 빼곡히 표기해둔다. 이 노트가 있어야 공연을 안전하고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당시 또 하나의 규칙이 있었다. 무대연습이 시작되면 무대 옆에 마련된 무대감독 데스크에 이 노트를 항상 보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유학생이라 말도, 무대라는 공간도 익숙지 않던 나는 무대 전체 상황을 상상하며 연습할 겸 악보노트를 들고 기숙사로 갔다.

다음날 연출가에게 꾸중을 들었다. 공연 준비를 잘하려고 가져간 것이라서 꾸중 듣는 것이 억울했지만 생각해 보니 그럴 만했다. 만일 무대감독이 악보노트를 가지고 다니다가 극장에 오지 못할 사정이 생긴다면 공연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무대감독의 악보노트가 있다면 누구라도 그 노트를 보고 공연할 수 있다. 무대감독을 잘하기 위해, 나 자신의 상태에 집중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배운 계기였다. 공연을 위한 책임감은 나와 더불어 모두가 함께 지는 것이고, 내가 노력해 만든 정보는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작곡가는 단지 예쁜 멜로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곡을 노래하는 가수의 음역대와 발성 구조, 음색 등을 이해해야 더 좋은 음악을 구현할 수 있다. 음악은 함께 책임지는 공동작업이기 때문이다. 만드는 사람과 연주하는 사람, 서로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그들의 책임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합창단이 노래를 부를 때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각자의 파트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이 맡은 선율을 부른다고 해서 이들의 음악이 아름다워질 수는 없다. 서로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악보가 표시하고 있는 악상과 셈여림이 서로 어울리는지 확인하며 지휘자와 교감해야 음악을 완성해나갈 수 있다.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은 경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삶의 무대에서는 누구와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지 한 번 생각해보고 노력해야 훨씬 효율적으로 자신의 무대를 끌어갈 수 있다. 어느 극장의 무대감독 채용 공고문에 ‘극장 각 분야의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유머감각이 있는 자’라고 쓰인 것을 본 적이 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자기 주변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