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밥은 안 짓고 밥솥만 놓고 싸워"

대한상의 제주포럼서 쓴소리

정치에 발목 잡힌 한국 경제
경제 탓만 하는 '정치' 비판
“밥은 안 짓고 밥솥, 밥그릇만 놓고 싸울 땐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사진)의 쓴소리다. 일본은 치밀하게 정부 부처 간 작전을 짠 듯 보복해오는데, 한국은 서로 책임을 돌리는 데 급급한 현실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했다. 18일 ‘제44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이 열린 제주 신라호텔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다. 그는 “한국 경제는 무기력해지고, 기업들이 감내해야 하는 부담은 점점 커지는데 서로 싸우는 모양새라 걱정이 많다”고 했다. 정치에 발목 잡힌 ‘한국 경제’와 ‘경제’ 탓만 하는 ‘정치’를 점잖게 비판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박 회장은 일부 정치권이 ‘대기업이 소재·부품사업을 제대로 키우지 않아 일본에 경제보복을 당했다’는 논리로 기업들에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을 개탄했다. 그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소재·부품 기술 이전 및 투자 등의 지원을) 안 해줘서 이렇게 됐다는 것은 너무 나간 얘기”라며 “그동안 기술이 우위에 있고 적기 공급이 가능한 일본 제품을 많이 썼던 것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기업을 응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젠 ‘갑론을박’을 멈추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서로 입장차를 드러낼 때마다 양국 언론에 민낯이 드러나니 지금은 차분하고 침착하게 뜻을 모아야 한다”며 “최선을 다해 대통령이 대처하도록 돕고 기다려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부와 정치권의 적극적 지원도 절실하다고 했다. 박 회장은 “기업들이 최선을 다해 대처하려면 정부와 국회가 전폭적으로 도와줘야 한다”며 “(기업이) 수급처를 다변화하려면 대체품이 개발돼야 하는데, 개발 인허가에 2년이 걸리면 되겠냐”고 되물었다. 부품·소재 국산화를 위해 산업안전보건법과 화학물질관리법 등 관련 규제 완화 등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의미다.기업들도 해외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국내에서 기술을 1부터 100까지 다 개발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며 “해외에서 일부를 가져오거나 사오는 쪽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더딘 규제 완화 속도에 대한 피로감과 아쉬움도 털어놨다. 젊은 기업인들을 만나보니 사업 장애 요인은 △입법 미비 △공무원의 소극적 행정 △기득권과의 충돌 △융복합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요약된다고 전했다. 그는 “6년 동안 규제를 개혁해달라고 목청 높여 외쳤는데 이제 겨우 첫 번째 관문에 도달한 것 같다”며 “기성세대로서 장벽에 막힌 젊은 기업인들을 보면 미안하다”고 했다.

서귀포=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