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분별한 '현금 복지'에 매년 100兆…저소득층은 더 빈곤해졌다

구멍뚫린 재정
(7) 보편복지에 재정 거덜 날 판
경기침체 여파로 지난달 실업급여 지급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4.7% 증가한 7587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10일 삼일대로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실업자들이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지난해 11월 26일 문재인 대통령은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을 청와대에서 만났다. 만남은 화기애애했다. 구리아 사무총장은 “최근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괜찮은 성적”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그는 대화 말미에 한국 관련 보고서 몇 개를 문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한국 경제조사’ ‘나이 들면서 일 잘하기’ 등이다.

보고서엔 대화 때와는 다른 날선 지적이 담겨 있었다. ‘한국은 고령화 속도가 빠른데 기초연금과 건강보험 지출 등이 급증하고 있다’ ‘이런 추세면 2060년 정부 순채무가 국내총생산(GDP)의 196%까지 치솟을 것’ 등이다. 복지 지출을 적절히 제어하지 않으면 재정 파탄에 이를 것이란 진단이다.하지만 구리아 사무총장의 조언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복지분야 예산을 전년보다 12.2% 많은 162조원을 배정했다. 역대 최고 증가율이다. 기초연금과 같은 보편적 복지와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는 ‘문재인 케어’는 확대일로다.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복지 확대에 미래 세대 부담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 지출 증가율, 전체 예산의 두 배

한국 복지분야 예산(본예산 기준)은 2013년 99조원에서 2018년 144조원으로 45.7% 증가했다. 전체 예산 증가율(22.9%)의 두 배가 넘는다.복지 확대의 내용이 더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무차별적인 현금 살포식 지출이 많아서다. 만 6세 아동에게 한 달에 1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이 대표적이다. 소득을 묻지 않아 억대 연봉자도 혜택을 받는다. 아동수당 도입 당시 “0~5세는 어린이집 보육료나 가정양육수당을 받고 있어 아동수당까지 주면 중복 지원”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아동수당 예산은 올해 2조1267억원에 이른다.

OECD가 “여유있는 노인까지 지원해서 문제”라고 지적한 기초연금(올해 예산 11조4952억원)은 지원 범위를 유지한 채 지급액을 월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늘렸다. 정부는 40만원까지 높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올해 기초연금과 아동수당 예산 증액분은 전체 보건복지부 예산 증액분의 40.5%를 차지한다.

빈곤율은 14.9%→15.7%로 악화모든 의료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 지원하겠다는 문재인 케어도 세계 유례없는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나온다. 윤희숙 교수는 “한국 정도의 경제 규모에서 모든 비급여(건강보험 미적용)를 국가가 지원하겠다는 나라는 없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케어 탓에 현재 약 20조원인 건보기금 적립금은 2023년 11조원으로 반토막 날 전망이다. 2026년엔 아예 기금이 소진될 것이란 예측도 나온다.

문제는 정부가 주력하는 복지가 대부분 보편적 복지다 보니 저소득층 빈곤 해소 효과는 미미하다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2018 빈곤통계연보’를 보면 작년 2분기 기준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50% 미만자 비중)은 15.7%로 1년 전(14.9%)보다 악화됐다. 가난한 사람이 더 늘었다는 뜻이다. 매년 100조원이 넘는 나랏돈을 복지에 퍼붓고도 저소득층 빈곤이 심해지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북유럽 국가도 보편 복지 개혁하는데한국이 ‘복지의 모범 사례’로 벤치마킹하는 북유럽 등 선진국은 보편적 복지를 개혁하는 추세다. 스웨덴은 1946년부터 소득과 무관하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운영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고령화에 따른 재정 부담이 커지자 1998년 보편적 기초연금을 폐지하고 최저보장연금으로 대체했다. 다른 연금소득이 일정 기준 이하인 노인에게만 차액분을 보충해주는 방식이다. 노르웨이도 2011년 최저보장연금을 도입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