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 JOY] 세로본능 일깨운 TV

블랙리뷰어2.0 - 삼성전자 '더 세로'

가족과 보다가 내 방에서 나만의 TV 즐겨
영화·드라마선 '세로 콘텐츠' 찾기 어려워
1980년대생인 기자는 ‘애니콜 가로본능’ 사용자였다. 아이폰이라는 혁신이 탄생하기 전인 2005년, 가로본능을 쓰는 사람이 왠지 모르게 ‘힙’하게 느껴질 때였다. 당시 가로본능 CF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골키퍼는 세로로 긴 골대 앞에서 무력해지고, 교수님은 세로로 긴 칠판에 글자를 쓰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다. 세로로만 긴 버스 정류장 때문에 기다리던 사람들은 비에 쫄딱 젖고, 세로로 긴 백미러에는 내 얼굴 하나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광고는 말한다. 넓은 세상을 담기엔 세로로 긴 휴대폰 액정은 너무 좁다고.

15년이 지난 지금 삼성이 ‘세로본능’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가로로 넓은 TV로 보기엔 우리는 이미 세로 세상에 더 익숙하다며 내놓은 게 세로형 TV ‘더 세로’다. 광고·게임업계는 물론 영화계까지 스마트폰에 딱 맞는 세로형 콘텐츠를 내놓는 가운데 이제는 TV를 통해 이런 콘텐츠의 재미를 극대화하라는 것이다. 가족들이 모여 안방극장(TV)에서 드라마를 함께 보던 시대가 가고, 각자의 방에서 스마트폰으로 맞춤형 콘텐츠를 즐기는 시대에 TV도 변화해야 살아남는다는 절박함이 느껴졌다.

제품을 빌려 약 1개월간 각종 콘텐츠를 시청해봤다. 첫인상은 거실이 아닌 방에 두기엔 생각보다 무겁고 크다는 것. 세로로 긴 43인치 TV가 이젤처럼 고정돼 있는데, 가게 앞에 놓여 있는 안내판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제품이 무거워 도움을 받지 않고 제품을 이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용법은 굉장히 직관적이다. TV를 켜면 갤럭시 S10 스마트폰에 스마트싱스 앱(응용프로그램)이 구동되고, 자동으로 ‘삼성 더 세로 TV’ 항목이 등장한다. 앱에서 ‘스마트폰 미러링’을 선택하거나 TV 옆 특정한 위치에 스마트폰을 가져다 대기만 해도 근접무선통신(NFC) 기반 미러링이 실행된다. 미러링이란 스마트폰 화면을 TV로 그대로 보여주는 기능을 뜻한다.
제품은 ‘덕질’(자신이 좋아하는 분야에 심취해 찾아보는 행위)에 특화된 TV였다. 스마트폰으로 유튜브에 들어가 ‘방탄소년단 뷔 세로직캠’을 검색했다. 음악방송에 출연한 뷔의 춤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다. 답답한 스마트폰 화면이 아니라 43인치 TV로 말이다. 이어 딩고뮤직의 ‘세로 라이브’를 검색해 봤다. 윤종신이 ‘좋니’, 수지가 ‘행복한 척’ 등을 라이브로 부르는데 구독자들이 해당 연예인의 모습에 집중할 수 있도록 아예 세로로 영상을 찍었다. 영상을 TV로 보면서 놀란 점은 예상외로 생생한 음향이었다.

보통의 TV는 콘텐츠를 시청하지 않을 때는 꺼둔다. 하지만 이 제품은 TV를 보지 않을 때 시계, 포토월, 사운드월 등으로 사용할 수 있다. 밖에서 블루투스로 듣던 음악을 집에 오면 TV를 통해 듣는 것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 4.1채널, 60W(와트)의 고성능 스피커를 장착해 생생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더 세로를 쓰고 있다고 하자 광고업계의 한 지인은 최근 광고업계에도 모바일용 세로 광고가 대세라고 귀띔했다. 왜 굳이 세로로 광고를 만들까. 한 조사에 따르면 가로 화면보다 세로 화면으로 제작된 동영상 광고를 끝까지 보는 비율이 9배나 높았다고 한다. 세로 콘텐츠가 가로 콘텐츠에 비해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고, 자연스럽게 집중도도 높아진다는 것이다. 실제 그랬다. 트와이스의 LG전자 광고, 혜리의 동아제약 광고, 손나은의 닥터그루트 광고 등 유명한 세로 광고들이 재미있어 TV로 몇 번이나 돌려봤다.

그렇다고 세로로만 보는 TV는 아니다. 리모컨 가운데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바로 화면이 가로로 회전된다. 이때부터는 일반 TV처럼 사용하면 된다. 케이블을 연결할 필요도 없었다. 넷플릭스와 유튜브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는 미러링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평소 TV를 이용할 때처럼 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

문제는 며칠 사용하다 보니 결국 가로로 고정해두고 쓰게 된다는 점이었다. 세로 콘텐츠가 아직까지 아이돌 직캠, 음악 콘텐츠, 광고, 일부 게임 등에 한정돼 있어 즐길 만한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세로 콘텐츠에 더 익숙한 세대는 1990~2000년대생이지만 189만원을 내고 나만을 위한 TV를 구매할 만한 소비 여력이 없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어 보였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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